'E.T.' 보고 자라 봉준호에 감동… 목표는 '재밌는 영화'

생애 첫 영화로 스티븐 스필버그를 기억하고, 봉준호의 영화를 보며 20대를 보낸 세대. 30대 감독은 최근 한국 영화계에 출현한 신인류(新人類)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감시자들' '더 테러 라이브' '숨바꼭질'과 '연애의 온도'는 30대 초반 감독들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며, 서른 살짜리 감독이 칸 영화제 단편부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들의 작품은 단지 흥행에만 성공한 게 아니라 이전 세대의 영화와는 차별화된 이야기와 영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徒弟 아니라 학교에서 배워

30대 감독 10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모두 지난 1년간 흥행작, 화제작을 내놓거나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영화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감독들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33.2세. 20대 중반에 이미 첫 상업영화를 찍은 조의석(37) 감독을 제외하고 나머지 9명은 모두 35세 미만이다. 9명 중 각각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를 찍은 문병곤과 이병헌 감독 빼고는 모두 지난 1년 사이 첫 상업영화를 발표했다.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은 80년대 이전의 정치적·사회적 격변을 겪지 못했다. 대신 자라면서 88서울올림픽과 IMF를 경험했다. 이들 영화에서는 정치 대신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물론 그마저도 상업영화의 소재로 이용된다. 일본 문화 개방과 PC와 VCR의 보급으로 이들은 외국의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영상에 특히 익숙하기도 하다.

10명 중 7명은 종합대학 영화과나 한국영화아카데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등 영화 전문 교육 기관에서 공부했다. 이들 중 절반은 감독 데뷔 전 현장 경력이 없고, 촬영감독 출신인 김병서 감독을 제외하면 나머지 감독들의 현장 경력도 1년이 넘지 않는다. 예전처럼 촬영 현장에서 장기간 스태프와 조연출로 경력을 쌓으며 도제(徒弟)식으로 영화를 배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이미 산업화로 체계가 잡힌 영화 현장에 발을 들인 덕분에 중저가예산으로 흥행작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10명의 감독이 꼽은 생애 첫 영화 중 한국 영화는 단 한 편('우뢰매2'·김병우 감독)뿐이다. 'E.T.' '인디애나 존스' '레이더스' 등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을 꼽은 게 4명, '리셀 웨폰' 시리즈로 유명한 리처드 도너 감독의 '구니스'를 꼽은 게 한 명이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상업영화 감독들의 작품들을 첫 영화로 본 할리우드 키드들이다.

◇좋아하는 외국감독은 미국 국적

좋아하는 외국감독 중에서도 유럽 출신은 단 한명도 없었다. 10명 중 9명이 미국 국적이고, 나머지 한명은 일본 국적이다. 그중에서도 이안을 꼽은 게 세 명이고, 제임스 캐머런, 크리스토퍼 놀란, 데이비드 핀처 등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감독들의 이름이 나왔다. 1980~90년대 프랑스문화원에서 유럽 감독들의 예술 영화를 주로 봤던 이전 세대와는 영화적 취향이나 지향점이 다른 셈이다.

이들 중 5명이 한국감독으로는 봉준호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박찬욱, 이창동, 허진호, 홍상수를 꼽은 이들도 있었다. 이 감독들은 모두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가 급격히 발전한 시기에 등장했다. 당시 이들이 내놓은 영화는 이데올로기와 신파에서 벗어나 리얼리즘이나 시각적 쾌감을 추구했다. 지금의 30대 감독들은 이런 영화를 보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보낸 것이다.

30대는 영상은 물론 새로운 문화나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유년기부터 할리우드 영화를 접하고 청소년기부터 한국영화 전성기를 목격한 30대 감독들은 이념이나 메시지보다는 '보는 재미'와 상업성을 추구한다. 영화 연출을 하는 이유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물었다. 이들은 대부분 "재미가 있어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