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오모리(靑森) 공항에서 버스와 일본 철도 JR을 갈아타고 달려왔더니 어느덧 저녁 6시였다. 작은 불빛이 깜박이는 오와니 온천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5분쯤 달렸다. 택시는 미끄러지듯 골목길을 내려갔다. 작은 다리, 야트막하고 아담한 가게들, 소리없이 흐르는 개천, 그리고 무성한 초록빛 숲. 푸르스름하게 내려앉은 땅거미에 잠긴 동네를 빙그르르 돌자 정갈한 간판 하나가 보였다. 온천을 끼고 들어선 디자인 료칸 '카이 쯔가루'에 그렇게 도착했다.
'카이(Kai)'는 일본 최대 규모의 리조트 업체 '호시노(Hoshino)'사(社)가 운영하는 온천 료칸 브랜드다. 이 회사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같은 초호화 료칸을 운영하는 곳으로 본래 이름이 나있다. '카이' 계열 료칸은 이 호시노야보단 덜 호화롭지만, 남다른 멋을 내는 곳으로 꼽힌다.
별채 객실 유안의 내부 구조. 가운데엔 일본식 정원이 있다. 넓은 마당과 맞닿은 테라스, 작은 부엌, 다도(茶道)를 즐길 수 있는 방도 있다.
'카이 쯔가루' 유안의 별채 노천 온천탕.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료칸 로비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벽화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벚꽃 피고 단풍 든 일본의 산수(山水)를 유려하게 그렸다. 일본 화폭의 대가 가야마 마타나리(加山又造)의 작품이라고. 엘리베이터 문엔 푸른 옻칠 바탕에 자개로 꽃을 새겨넣었다. 료칸에 배치된 모든 물건이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기품을 뿜었다. 호텔 직원은 작은 유리잔에 사과 주스를 담아왔다. "여긴 사과의 고장이니까요." 아오모리에 왔음을 그렇게 실감했다.
료칸의 방은 40여개. 다다미방과 침대방, 그리고 프리이빗 노천 온천과 작은 마당을 낀 단 한 개의 별채 객실 유안(悠庵)이 있다. 유안은 가장 비싸지만 가장 인기가 높아 예약하기 어렵다. 사방을 통유리창으로 마무리한 넓고 정갈한 다다미방. 객실 앞뒤로 넓은 잔디밭과 아담한 언덕, 초록빛 숲이었다.
아오모리의 특산물 가리비 구이
아침도 온통 초록이었다. 흩어지는 햇살에 눈을 뜨자 유리창 너머로 연둣빛 대나무 숲이 바람에 이지러지는 풍경부터 보였다. 아침 식사 메뉴는 단출하고도 정갈했다. 생선구이, 절임(쓰케모노), 작은 그릇에 담은 수란과 쌀밥. 그리고 역시 사과 주스 한 잔. 한국말을 하는 직원 두 명이 있어 의사소통이 그리 힘들지 않다. 식사 하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유카타(浴衣) 차림이었다. 아침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문을 열어놓는 대욕장에서 온천을 즐기고 쉬다 유카타만 걸치고 나와 식사를 하고 다시 온천을 하는 식이다. 이곳 홍보담당 미야유치 후미씨는 "이곳에 오는 손님의 절반 정도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 위해 온다더라"고 했다.
정 심심하면, 오와니 온천 역에서 JR을 타고 히로사키 역이나 아오모리 역으로 나간다. 우리나라 택시 요금을 생각하고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는 건 금물. 30분 정도 되는 거리인데, 자칫하면 택시 요금이 1만5000엔(16만5300원) 정도 나온다. 역 근처엔 아오모리의 특산물 가리비를 소금에 굽거나 버터에 살짝 볶아 내주는 가게가 제법 있다. 아오모리 역 근처 신마치(新町)에 있는 '가키겐(枾源·017-722-2933)'이 유명하다. 1400~1600엔.
아오모리 역 6번 정류장에서 운전면허센터행 시영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가면 아오모리현립미술관에 닿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 작품 250여점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거대한 강아지 '아오모리켄' 같은 대표작이 곳곳에 있다.
저녁에 료칸으로 돌아와선 가이세키 요리를 먹고 밤 온천을 즐겼다. 마지막 날은 매니저가 일러준 대로 유안에서만 머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심심하면 책을 읽었고, 배고프면 사과를 먹었다. 밤엔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들이 새파랗게 총총했다. 문의 3-5566-5117, kr.hoshinores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