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短篇을 마이너라고 했는가

12일 개봉하는 픽사의 애니메이션 '몬스터 대학교'를 보는 관객이라면 영화 상영시간에 절대 늦으면 안 된다. 영화 시작 전 단편 애니메이션 '파란 우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을 배경으로 우산과 하수구, 신호등을 의인화해 도시의 표정을 그린 작품으로 포토리얼리즘(사진처럼 보이는 극도의 사실주의)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만들었다. 픽사의 상상력과 이야기의 내공(內工)이 7분짜리 단편에 다 담긴 셈.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상영 전에는 이런 단편이 하나씩 공개되는데, 이번이 스물여섯 번째다. 지난해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 상영 전 나왔던 단편 '페이퍼맨'은 올 초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기도 했다.

상영시간이 40분 이하인 단편 영화는 짧지만 강하다. 주로 아마추어들이 비상업적으로 단편을 제작해왔기 때문에 '마이너' 취급을 받았지만 최근 들어 '어엿한 작품'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신기술·인재 발굴 도구, 단편

지난해 '라 루나'라는 단편을 선보인 픽사의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픽사가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힘든 단편을 꾸준히 제작하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고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애당초 컴퓨터 회사로 출발한 픽사는 컴퓨터를 홍보하기 위해 단편 '룩소 주니어'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큰 반향을 얻으면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회사 안에서 누구나 단편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이 채택되면 회사의 지원 아래 단편을 제작한다. '몬스터 대학교'의 댄 스캔론 감독이나 '브레이브'의 마크 앤드류스 감독 등은 모두 픽사에서 만든 단편을 발판으로 장편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단편 영화가 신인 감독의 재능을 재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시간과 돈이 적게 들지만 기술과 미학을 응집해 보여주는 단편은 감독의 역량을 확인하기 위한 경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홍진('황해'), 윤종빈('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김한민('최종병기 활'), 조성희('늑대소년'), 허정('숨바꼭질') 등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감독들이 모두 미쟝센 단편영화제 출신이다.

단편을 통해 두각을 드러낸 후 장편 영화로 진출하는 감독들이 늘면서 단편을 연출하는 감독 지망생들도 늘어났다. 7월 31일 출품 신청 마감된 아시아나 국제 단편영화제엔 역대 최다인 3959편이 접수됐다. 10년 전 첫 회(656편)에 비해 5배가 늘어난 셈이다. 미쟝센 영화제를 기획한 이현승 감독은 "장편엔 이야기의 힘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의 역량이 보태져야 한다. 하지만 단편은 오로지 감독의 개성적인 연출과 감수성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감독의 재능을 알아보기엔 매우 적합하다"고 했다.

◇"장편은 소설, 단편은 시"

단편에 대한 일반 관객들의 관심도 높아져 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다양해졌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제천음악영화제 등 영화제에 단편부문이 있음에도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단한 단편 영화제'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대구단편영화제' '부산단편영화제' '서울단편영화제' '올레 스마트폰 영화제'등 단편 전문 영화제만 한 해에 10여개가 열린다. 영화제 수는 늘어났지만 각 영화제의 관객은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7월 폐막한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전회가 거의 매진되면서 평균 좌석점유율이 90％에 달했다.

수요와 공급이 함께 늘어나다 보니 영화제에서 말고는 보기 힘들었던 단편이 극장에서도 개봉되기 시작했다. 단편의 극장 관람 요금은 4000~5000원. 3월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의 단편 '주리'와 6월 김태용 감독의 단편 '그녀의 연기'는 극장 개봉으로 각각 1000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독립영화 디지털 배급사 인디플러그는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단편영화를 한 편씩 개봉해왔다.

이현승 감독은 "단편과 장편의 차이는 시와 소설의 그것과 같다. 단편은 장편과 차별되는 고유의 형식과 매력을 갖고 있으며 짧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실험적이다'는 이유 때문에 단편과 거리를 뒀던 일반 관객들도 다양한 경로로 단편을 접하면서 그 매력에 눈을 뜬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