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가까워 인재(R&D 인력)도 몰려… 판교, 중견·중소기업엔 기회의 땅

이경수(67) 코스맥스 회장은 21년 동안 최고경영자(CEO)로 있으면서 아주 잘한 결정 가운데 하나로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로 연구소를 이전한 것을 꼽는다. 화장품 제조 중소 기업이었던 코스맥스는 화장품을 직접 개발·생산해 로레알·랑콤 등 세계 유수의 화장품 업체에 납품하는 ODM(제조자 개발·생산) 업체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연구소를 2011년 판교테크노밸리로 이전한 이후 신제품 개발은 물론 영업도 술술 풀렸다"고 말했다. 중소 제조업에서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제조 기업으로 급성장했다는 뜻이다.

코스맥스는 판교테크노밸리에 기업 입주가 시작된 직후인 2011년 6월 경기도 화성에 있던 연구소와 서울 양재역 근처에 있던 영업팀을 판교로 모이게 했다. 연구·개발(R&D)직과 영업직이 수시로 모여 협업에 나섰다. 신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졌고 고객 만족도도 크게 높아졌다. 이 회장은 "화장품 ODM은 시간과 싸움을 벌이는 작업"이라면서 "영업·디자인·R&D팀이 공동으로 대응하니 자연히 고객 만족도가 높아지더라"고 말했다.

그가 꼽는 판교 이전의 최대 효과는 질 좋은 R&D 인력 채용이 가능해졌다는 점. 연구소가 화성에 있을 때만 해도 석사급 인력을 채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지만, 요즘은 석사급 인력의 지원이 넘쳐날 정도다. 판교 이전 이후 새로 뽑은 R&D 인력 40여명 대부분이 석사급이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서울 근교에 이런 연구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죠."

판교테크노밸리가 중소·중견기업에 기회의 땅으로 부상 중이다. 판교에 둥지를 튼 중소기업에 양질의 R&D 인재가 몰리면서 그동안 약점으로 꼽히던 R&D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중견기업이 판교를 기회의 땅으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R&D 인력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계(財界)에선 'R&D 인력은 대전 대덕 라인, 엔지니어는 경기도 기흥 라인,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은 판교 라인이 마지노선'이라는 말이 정설(定說)처럼 받아들여진다. 삼성전자·LG전자 같은 대기업마저 대전 이남 지역에서 근무할 R&D 인력을 뽑는 데 애를 먹는다. 이런 상황에서 R&D 비중이 높은 중소·중견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판교에 둥지를 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자동차 납품 업체인 유라코퍼레이션은 경기도 화성과 충북 청주 등지에서 운영하던 연구소를 2011년 판교로 통합 이전했다. 연구소 통합은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우수 R&D 인력 영입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이 회사 박정준 이사는 "대기업은 대덕 라인이 마지노선이지만 중견기업은 판교가 마지노선"이라면서 "중소기업이 우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선 판교 이전 외엔 대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이 같은 업종의 중소·중견기업을 끌어들여 동반 성장하는 유인(誘引)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콘텐츠 분야가 대표적이다. 뽀로로를 만드는 애니메이션(만화영화) 제작사인 오콘은 지난해 초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판교로 회사를 옮겼다. 콘텐츠 관련 회사들이 앞으로 속속 판교로 입주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이철 팀장은 "애니메이션은 제작사와 외주사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업종"이라면서 "아직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과 구로구 구로동 등지에 흩어져 있는 외주사가 판교로 모이면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경쟁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해 있는 기업 가운데 대기업 비중은 19.3% 선이다. 반면 중견기업 비중은 51.8%나 되고 중소기업도 28.9%에 이른다. 연구 단지에 입주한 기업 10개 가운데 8개는 중소·중견기업인 셈이다.

현재 판교 입주 기업 중에선 기업 가치를 1조원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로 '1조 클럽' 회원으로 가입한 회사가 21개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10개 회원사로 시작해 1년 사이에 2배로 늘어났다. 회원사들은 최근 스마트러닝(태블릿PC 등을 활용한 교육) 사업에 교육 콘텐츠, 스마트 학습 환경, 로봇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공동 입찰하는 등 공동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은 "판교테크노밸리는 R&D 중심의 중소·중견기업엔 최적 입지"라면서 "판교에 입주한 중소·중견기업이 앞으로 우리나라 산업 전체를 이끌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제조자 개발생산)

개발 능력을 갖춘 제조업체가 제품을 만들어 유통업체 등에 공급하는 생산 방식. 판매 업체의 설계에 따라 단순히 생산만 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과 달리 자체 개발해서 납품하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