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前 아로나민 개발후 영업까지… 회사 매출 4분의 1, 광고로 썼죠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천식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좋은 약을 만들어 치료해 드리겠다는 마음에서 약대에 들어갔다. 졸업 후에도 약국 개업 대신 제약업계로 들어가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남이 만든 약을 팔기보다는 제대로 된 양약(良藥)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광제약을 잠시 거친 뒤 1960년 일동제약에 입사했다. 신제품 개발은 물론 최신 설비 가동이나 품질 관리상 문제점 해결에 여러 성과를 올리면서 입사 1년 만에 생산부장이란 중책을 맡았다.

당시 일본에선 활성비타민이 붐을 이뤘다. 국내에 이미 비슷한 제품이 나와 있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제품을 구해 직접 비교해보니, 일본 제품은 맛이 쓰고 마늘 냄새가 강했는데, 국내 제품은 쓴맛이 없고 냄새도 약했다. '아, 이게 바로 품질 차이구나' 싶었고, 제대로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품고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신제품 개발은 곧 특허라는 장벽에 부딪혔다. Y제약이 특허를 선점한 것이었다. 특허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자체가 무효가 될 만큼 허술했다. 그래서 제품 개발을 강행했다. 착수 2년 만인 1963년 마침내 '아로나민' 개발에 성공했다. 일동제약이 제품을 내놓자 특허 문제로 눈치를 보던 다른 제약사들이 우르르 따라 만들어 유사 제품이 10여개에 이르렀다. 결국 협상을 통해 Y제약과 특허를 공유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수많은 유사 제품 중에서 아로나민을 알리고 차별화하는 것이 큰 과제로 떠올랐다.

당시 영업부장이 누군가 책임지고 자신 있게 나서지 않으면 신제품을 성공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나를 후임으로 추천했다. 영업 경험이 전혀 없던 나로서는 앞이 캄캄했지만, 아로나민의 성공을 위해 끝까지 도전해 본다는 생각으로 영업부장 직책을 받아들였다.

종근당, 동아제약, 유유산업 등 쟁쟁한 경쟁사에 비해 일동제약은 영업 사원이 5명에 불과할 만큼 영업력이 보잘것없었다. 이를 극복하려면 파격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나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약사 출신 영업 사원을 모집하여 종합병원 의사들을 상대하게 했다. 의사가 인정하지 않는 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 약국 약사들과 의원들을 대상으로 그룹 디테일(Group detail)을 열어, 직접 쓰디쓴 아로나민을 씹어 먹어 보이면서 효능 차이를 부각하고자 노력했다.

대중에게 아로나민을 알리는 일은 더 어려웠다. 출시한 지 6개월이 지난 뒤에 나는 당시 회사의 월 매출액 400만원의 4분의 1인 100만원을 광고비로 쓰겠다는 겁 없는 제안을 했다. 훨씬 큰 회사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모두가 반대했지만, 대대적 광고 없이는 아로나민의 성공도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광고비를 승인하지 않으면 이미 세워놓은 특별 판매 계획까지 다 취소하겠다고 버틴 끝에 마침내 회사의 사활을 건 광고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신문에 대대적 광고를 집행하자 아로나민 매출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하지만 그해 10월 제약업계에 큰 불경기가 찾아와 도매상들이 도산하고 제약사 대부분이 광고를 중단했다. 우리도 매출이 광고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논란 속에서도 광고를 지속했다. 일견 모험처럼 보였지만 이미 팔린 아로나민의 매출이 적지 않았기에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다음 해 경기가 살아나면서 내 판단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출이 크게 늘었음은 물론, 광고를 멈췄던 경쟁 제품을 따돌리고 아로나민이 활성비타민 시장의 대표 주자가 된 것이다. 이런 성공에는 당시 권투 영웅이었던 김기수 선수의 타이틀매치를 후원하는 등 스포츠 마케팅을 선구적으로 도입하고 "승리! 아로나민 효과" "체력은 국력" 같은 강력한 슬로건을 내세운 남다른 스포츠 마케팅의 힘도 크게 작용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회사의 사활을 건 그때의 겁 없는 광고 승부수는 지금까지 무려 반세기가 넘도록 국민 영양제로 사랑받으며 비타민 시장의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아로나민 성공 신화'의 결정적 계기였다.

아로나민의 성공을 통해 품질을 차별화하고, 과감하게 광고를 집행하면서, 병원 마케팅을 비롯한 적극적 영업 전략을 병행하는 삼위일체 성공 방정식의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판단한 나는 이후 일동후디스 경영 현장에서도 동일한 방법을 적용했다.

나는 50여년간 몸을 담았던 제약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일동후디스를 종합 식품 기업으로 키우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아로나민 부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 시절의 도전 정신과 열정, 그때 느꼈던 보람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


이금기 회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84년부터 CEO '국내 최장수'

이금기(李金器·80) 일동후디스 회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CEO(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꿈을 이룬 인물이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후 1960년 일동제약 평사원으로 입사해 50여년을 ‘일동맨’으로 살았다. 1984년부터 일동후디스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는 국내 최장수 전문경영인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국민 영양제로 유명한 ‘아로나민’ 개발과 영업 마케팅을 진두지휘해 성공했다. 1995년에는 전문경영인 최초로 한국제약협회 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제약 회사이던 일동을 종합 식품 회사로 만드는 역할도 했다. 1996년 남양산업을 인수하여 일동후디스로 사명을 바꾸고 한국형 종합 이유식 ‘아기밀’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시켰다. 이 회장은 최근에는 건강 기능 식품 개발을 통한 기업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