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의료 기술보다 질병 예방에 투자하세요"

"한국은 높은 교육 수준에다 발전된 IT를 자랑해 원격 진료 시대가 도래하면 미국보다 훨씬 빨리 적응할 겁니다."

세계적 미래학자로 꼽히는 조너선 펙(Peck) 대안미래연구소(IAF) 소장은 11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의 바이오산업 성장 가능성에 대해 "훌륭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IAF는 '제3의 물결'로 유명한 앨빈 토플러 등이 1977년 공동 설립한 연구소다. IAF는 지난 35년간 정부와 산업, 전문가, 비정부단체들에 미래 세대를 위한 기반을 닦는 희망적 청사진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펙 소장은 소개했다.

펙 소장은 이번에 '바이오 코리아 2013' 행사 참석차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바이오 코리아 2013'은 충북도·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 등이 후원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바이오 전문 행사다.

펙 소장은 10~20년 안에 로봇 기술과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재생의학이 크게 발전해 의료·보건 현장에서 더 활발히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한국은 급격하게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에게 로봇이 폭넓게 쓰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단순히 몸을 일으켜주는 도우미 로봇만 나오는 게 아니라 무릎 등에 직접 부착해서 한 몸처럼 움직임을 돕는 로봇도 나올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다. 또 재생의학이 발전하면, 시력이 나빠진 환자 등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펙 소장은 전망했다.

그러나 펙 소장은 각종 '장밋빛' 신기술 치료보다는 질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투자·연구하는 데 더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진료(Health Care)'보다는 아프지 않도록 '건강(Health)' 그 자체에 투자하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보건 당국의 보건 개혁 자문을 하고 있다. 펙 소장은 "미국은 치료 분야에만 투자가 지나치게 쏠려 투자 대비 성과도 잘 내지 못한 '나쁜 예'"라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미국은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투자와 연구를 진행했지만, 결국 암 정복도 못 하고, 암 환자들이 한 달에 1000만~2000만원씩 약값을 쓰면서 고작 3주 정도 생명 연장을 하는 현실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바에야 암 등 각종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의학이나 주민 복지, 좋은 거주환경 등을 만드는 데 더 투자했으면 더 큰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펙 소장은 말했다.

펙 소장은 특히 한국은 병을 치료하는 것만큼이나 예방하는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 앞으로 바이오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질병 예방 차원에서 최근 주목받는 동양의학에 대한 유산과 전통이 풍부해 유리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명상이나 요가, 기(氣) 치료 등과 같은 동양의학은 최근 미군의 정신 치료에도 활용할 정도로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는데, 한국은 이를 잘 지켜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로봇은 물론 앞으로 주목받을 3D프린팅 기술 분야 등을 발전시킬 산업적 토대도 잘 갖춰진 것으로 그는 평가했다.

펙 소장은 "미래에는 아인슈타인 로봇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물리학을 가르칠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팔을 세 개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며 "다만 (팔이 세 개라면) 연애를 하기에는 좀 곤란해 현실 가능성은 좀 떨어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