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한 권 만드는 데 수억원, 집사람이 미쳤대요"

"살아오면서 목덜미에 주렁주렁 별을 단 사람들이 내가 방문한다고 건물 앞에 도열해 있는 거 처음 봤어요."

요리사 김원일(56)이 지난 9일 해병대 사령부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작년 5월 출간한 자신의 요리책 '쯔루가메 김원일의 일본요리 1·2'를 백령도·연평도·우도·대청도·소청도·강화도·김포·포항·제주에 있는 전(全) 해병에게 5400만원어치 200세트 기부한 공로다. 그는 작년 9월 성남시 국·공립도서관 80곳에도 이 요리책 80세트를 기증했다. "이 몸이 해병대 356기잖아요. 후배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제 요리책을 보고 있대요. 으하하!"

그런데 이 요리책, 간단치가 않다. 그릇과 재료, 고급스러운 모양새는 내버려두고라도 한 세트의 정가(定價)만 27만원(권당 13만5000원)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는 없다. 출판사와 일이 꼬여 이미 낸 책 2000세트를 집 창고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국가에 기증하리라 결심한 것이다.

회와 초밥, 무침 등 일본 요리 만드는 법은 물론이고 칼과 조리도구 다루는 법, 채소와 어패류 손질하는 법, 그릇에 요리 담는 법까지 선명하고 세세한 사진 50만 컷을 곁들여 실어 요리 초보자부터 베테랑까지 손쉽게 따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1권 103쪽 '아귀 해체하기' 부분을 펼치면 껍질을 벗기고 배와 등, 턱, 머리뼈를 잘라내는 과정을 근접 사진 60컷에 걸쳐 설명해놨다. 송이버섯은 심마니와 산에 같이 가서 직접 따고 사진을 찍었다. "아귀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아무 데나 툭 잘라 써느냐. 그러면 재료 본연이 가진 맛이 하나도 안 납니다. 칼이 250회는 지나야 해요. 내 마음대로 치면 생선도 그걸 알고 아무 맛을 안 냅니다."

김씨는 "집사람이 나보고 '보통 정신 나간 놈이 아니다'고 했다"며 웃었다. 지금까지 낸 책이 수십 종이 넘는데, 한 번 낼 때마다 쓰는 돈이 억대는 기본이고 10억원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 촬영 때 사용하는 그릇이 1000종류가 넘고, 전문 사진작가와 짝을 이뤄 민통선부터 제주까지 계절마다 두세 번씩 훑는다.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지지고 볶는 재료 값만 1~2억원에 달한다. "그래도 나는 좋아요. 돈 벌면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게 내 목표였으니까요."

꽁보리밥에 간장과 김치가 전부였던 공고 3학년 여름, 아버지 심부름으로 부산 동래관광호텔 총주방장에게 낚시도구를 가져다줬다가 주방에 있는 요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일을 하면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겠구나!" 그 길로 요리사가 됐다. 1986년 일본으로 유학 가 오사카 아베노쓰지 조리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90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2년간 요리를 배워왔다. 1997년 빚을 내 경기도 분당에 테이블 3개짜리 일본 요리 식당을 냈다. 가게 이름은 '쯔루가메(鶴龜)스시'. '김원일이 만든 요리를 먹으면 학과 거북이처럼 오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담았다.

1993년 '정통일본요리'를 시작으로 책을 한 권씩 낼 때마다 그때까지 벌어놓은 돈을 다 쏟아붓는다. 매년 책값으로만 2000만원을 쓴다. "왜? 남의 것을 안 읽고 책을 쓴다는 건 무식한 짓이니까!"

"요리한 지 38년 됐는데, 세상에서 최고 어려운 게 요리입니다. 같은 당근이라도 어제 들여온 당근, 오늘 들여온 당근이 달라요. 어떤 토양의 밭에서 어떤 물을 주고 길렀는지 나는 몰라. 매번 새롭게 다뤄야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