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들리'는 가을이 대목

"(쿵짝 쿵짝) 이 바암~ 왠지 그대가아아아~"

"(쿵짝 쿵짝) 해가 뜨며언~ 찾아올까아아아~"

지난 16일 서울 도봉구 창동 현레코드사 녹음실.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와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가 가수 금잔디를 통해 4분의 4박자의 차진 메들리로 '리메이크'되고 있었다. 그 옆 창고에는 메들리 음반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봄나들이철'과 함께 일년 중 양대(兩大) 대목인 '단풍철'을 앞두고 메들리 음악계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음반 하나에 최소 40여 곡이 수록되는 메들리 음악은 대중음악의 '재야(在野) 리그'. 전국 270여 곳의 도로 휴게소와 지역 축제, 5일장 등을 통해 주로 선보이고, 버스 운전사·관광객·촌로(村老) 등이 시즌 판도를 좌우한다. CD가 익숙하지 않은 시골 어르신 팬들이 적지 않다 보니 이 시장의 15% 정도는 아직 카세트테이프가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품 메들리 음반 매출만 연 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에서 음반을 판매하는 김정필 실장은 "1년 매출의 60% 정도가 가을 단풍철에 나오는데, 음반시장이 많이 죽었다곤 해도 단풍철만 되면 주말 기준 하루 40여 장 팔린다"고 했다.

하지만 메들리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도 여전히 남아있다. '중년층 탈선 조장 음악'이라거나 '남의 노래 가져다 대충 만들지 않느냐'는 게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박현웅 현레코드사 대표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주로 '관광 디스코'라는 이름으로 관광버스에서 음주가무로 흥을 돋우는 데 메들리 음악들이 사용됐지만, 지금은 특정 가수의 팬, 부모님께 노래 선물하려는 젊은 층, 졸음운전을 피하려는 화물차 기사 등 수요층이 다변화돼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정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했다. 음반 제작자들은 "고객들의 귀도 깐깐해져 선곡부터 녹음까지 제작 기간이 6개월 정도 걸리고, 전문 연주인들이 기타·전자오르간·색소폰 같은 주요 악기들을 연주하는 등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했다.

메들리계에도 '톱스타'로 꼽히는 가수들이 있다. 김용임·김란영·신웅·진성 등 이른바 '4대 천왕' 체제에 2~3년 전부터는 신세대가 부상하고 있다. 8090 노래를 변주하는 젊은 감각의 금잔디, '민요 메들리'의 유지나 등이 메들리 강자로 입지를 굳혔고, 홍원빈·김단아 같은 신진 세력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용임의 매니저이자 남편인 시성웅 영웅기획 대표는 "김연자·주현미·문희옥 등 대형 가수들이 톱스타로 성장하는 데도 메들리가 큰 역할을 했다"며 메들리의 생명력을 강조했다. 요즘 일부 메들리 가수들은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이상 KBS) '전국 톱텐가요쇼'(지역민방) '가요베스트'(지역MBC) 등의 빼놓을 수 없는 출연진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