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테크놀로지] 曲의 전쟁, 휘어야 휘어잡는다… 지금은 곡면 시대

TV·스마트폰·태블릿PC 등 각종 전자제품과 IT 기기의 화면은 기본적으로 평평한 직사각형으로 돼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것이 일종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요즘 전자업계는 이 '평평한 직사각형'이란 틀을 깨는 데 도전하고 있다.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휘거나 구부릴 수 있는 '플렉시블(flexible) 제품'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자제품을 마음대로 휘거나 구부릴 수 있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우선 이른바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옷이나 안경처럼 몸에 걸치는 컴퓨터를 만들려면 휘어지는 디스플레이(화면)와 배터리 등이 필요하다.

초보적인 제품은 이미 시장에 등장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해 출시한 곡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가 바로 그것이다. 곡면 TV 가격은 같은 크기의 일반적인 TV보다 약 3배 정도 비싸다. 곡면 TV는 OLED의 특성을 살린 제품이다.

OLED는 전기가 흐르면 스스로 빛을 내는 디스플레이 장치다. 기존 LCD TV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인 LCD는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뒤에 형광등이나 LED(발광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 같이 빛을 내는 장치를 따로 집어넣어야 했다. OLED는 광원(光源)이 따로 필요 없는 만큼 얇다. 철판도 얇게 만들면 조금씩 휘는 것처럼, 화면이 워낙 얇다 보니 살짝 휜 상태로 고정할 수 있다.

곡면 TV의 화면은 큰 원기둥을 세로로 잘라낸 것과 같은 모양이다. 삼성전자 곡면 OLED TV는 반지름 4.2m의 원기둥을 화면의 대각선이 55인치가 되도록 잘랐다. LG전자는 반지름 5m짜리 원기둥을 같은 크기로 절단한 형태이다. 반지름이 크다는 것은 조금 덜 휘어졌다는 의미다.

얼마나 휘었는지가 기술·품질의 우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TV사업부 한종희 전무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2~3m 떨어진 곳에서 등을 소파에 기대고 TV를 시청할 때 가장 이상적인 곡면을 찾았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제품의 크기, 주요 고객층의 일반적인 주택 내부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곡률(曲率·휜 정도)을 정했다"고 밝혔다. 제품의 곡률은 기술이라기보다는 소비자들의 선호에 대한 판단의 문제이다.

이렇게 곡률이 일정한 곡면 TV는 플렉시블 기술의 초보적인 형태다. 여기서 더 발전하면 '사용자가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는(bendable)' 화면을 채용한 전자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그 이후엔 '둘둘 말 수 있는(rollable)' 단계를 거쳐 '종이처럼 접을 수 있는(foldable)' 화면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플렉시블 기기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휘는 배터리'다. 자유자재로 구부리고 옷처럼 걸칠 수도 있는 컴퓨터에는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고정된 형태의 배터리를 장착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휘는 배터리는 아직 초기 연구·개발 단계이다. 손목시계형 스마트워치를 준비 중인 애플이 다양한 형태의 기기에 적용할 수 있도록 휘어지는 배터리 특허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런 배터리를 탑재한 제품을 공개한 적은 없다.

2차전지 제조업체인 삼성SDI의 박상진 사장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자유롭게 휘어지는 배터리가 나오려면 3∼4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