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막 던진 어음, 뿌린대로 다친다

8%대 고금리를 기대하고 동양인터내셔널 기업어음(CP)에 투자한 이모(57)씨는 불안한 마음으로 이번 추석 연휴를 보냈다. 동양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어음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동양레저 기업어음에 투자한 박모(49)씨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박씨는 "대기업 계열사라 문제없을 것으로 믿었는데 매일 아침 신문 보기가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기업이 발행한 어음 리스크(위험)가 자본시장을 흔들고 있다. 어음은 보통 외상 거래를 할 때 만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상거래와 관계없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된 융통어음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어음은 기업이 단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대표적인 융통어음이다.

◇줄 잇는 어음 사고

기업어음과 관련된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3일 기업회생 신청 계획을 알리지 않은 채 기업어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혐의로 LIG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 2011년 LIG건설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기업어음을 약 1800억원 집중 발행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 800여명이 3400여억원 피해를 봤고, 이 중 일반 투자자들도 20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웅진그룹 회장 역시 1200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재계 30위권인 동양그룹은 연내에 만기 도래하는 기업어음 7300억원 때문에 위기설에 휩싸였다. 그동안 계열사를 통해 투기 등급에 해당하는 기업어음을 계속 팔아왔지만 다음 달부터 계열사 회사채 및 기업어음 판매가 금지되면서 자금줄이 막힌 상황이다. 코스닥 상장사였던 에스비엠은 올해 '문방구 어음' 때문에 상장이 폐지됐다.

문방구 어음은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속어음 증서로 발행한 융통어음을 말하는데, 회계 법인의 외부감사 과정에서 문방구 어음이 발견돼 감사 의견이 거절된 탓이다.

◇잔량 계속 증가

이처럼 융통어음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간편한 발행 절차 때문이다. 문방구 어음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약속어음 증서만 있으면 최대 주주나 경영진이 마음대로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코스닥 상장사 아이에이(옛 씨앤에스테크놀로지)의 전 대표이사 서모씨는 횡령 의혹으로 대표이사직 해임이 확정되자 해임 하루 전날인 지난해 3월 12일 문방구에서 약속어음 용지를 구입한 뒤 회사 법인 인감을 찍고 공증을 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줬다. 아이에이는 최근 이 어음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회사나 주주들이 한순간에 손해를 떠안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발행 금액의 단위가 훨씬 큰 기업어음도 마찬가지다. 회사채 발행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이사회 승인이 필요하지만 기업어음은 대표이사 직권으로 발행할 수 있다. 일반 기업어음은 발행 시 담보나 보증도 불필요하다.

이 때문에 실제 기업어음 발행액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발행된 기업어음 잔량(16일 기준)은 총 140조원 규모로 작년 말(127조원) 수준을 이미 뛰어넘었다. 발행 잔량은 갚아야 할 기업어음 액수를 의미하는데 2011년과 2010년에는 발행 잔량이 각각 89조원, 73조6000억원 수준이었다.

◇리스크 확산 가능성도 문제

기업어음으로 개별 기업의 위험이 자본시장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과거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은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자 SK글로벌의 기업어음이 편입된 머니마켓펀드(MMF)에 대한 환매 요구가 빗발치는 등 금융시장 전체에 파장이 미쳤다.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기업어음에 문제가 생길 경우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동양증권 관계자는 "CMA 계좌의 주식이나 현금은 예탁결제원과 증권금융에 100% 보관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고객이 환매 요구를 할 순 있지만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부터 만기 1년 이상 기업어음에 대해서는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투자자 보호에 더욱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김재룡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제도실장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 선택권은 존중해 줘야 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자단기사채를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어음

상거래 대금을 치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발행하는 어음을 말한다. 담보가 없기 때문에 공기업 등 신용등급이 양호한 기업들이 주로 발행한다. 매출 채권 등 자산을 담보로 발행할 경우 자산 담보부 기업어음(ABCP)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