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 어디까지 왔죠?

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깃발을 들어 올린 경제 민주화는 올해 정국을 뜨겁게 달궜다. 일감 몰아주기 방지를 비롯해 갖가지 경제 민주화 법안이 쏟아졌다. 하지만 어떤 법안들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정확하게 꿰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을 정기국회가 열린 것을 계기로 경제 민주화 관련 법 제정이 어디까지 진도가 나가 있는지 종합 정리했다.

◇핵심 과제 7개 중 6개는 국회 통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경제 민주화 법안은 모두 14가지다. 그중에서도 야당이 시급하다고 주장한 7개 법안이 상반기에 먼저 논의됐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7월 초 "(상반기에) 중요 법안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7개 중요 법안' 중 상반기에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일감 몰아주기 방지 ▲전속 고발제 폐지 ▲가맹점주 권리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 부여 ▲불공정 특약 금지 등 6가지다. 이 6가지 법안들은 이미 공포됐고, 연말이나 내년 초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박 대통령이 꼽은 중요 법안 중 유일하게 통과되지 않은 것은 순환출자 금지 법안이다. 순환출자 금지는 가을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야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대기업들이 가장 촉수를 곤두세운 일감 몰아주기 방지 법안은 지난 7월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관건은 시행령으로 정하는 규제 대상 기업의 범위였는데, 총수 일가의 지분이 '상장사는 30% 이상·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로 사실상 확정됐다. 지난 23일 새누리당이 이 같은 공정위의 방안에 동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속고발제를 폐지한 것도 공정위의 독점적인 권한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감사원, 조달청, 중소기업청이 고발할 것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소비자 보호 법안 줄줄이 대기

가을 정기국회에서 순환출자 금지 법안이 만들어지면 전체 경제 민주화 입법의 절반이 해결되고, 박 대통령이 언급한 '중요 법안'은 모두 통과하는 것이 된다. 순환출자 금지 방안을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공정위나 국회에선 나머지 7개 법안은 내년에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들 나머지 7개 법안도 우선 논의 대상에서 밀리긴 했지만 도입되면 적잖은 파장을 부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7개 중 집단소송제, 사인(私人)의 금지청구제, 동의 의결제, 소비자 권익 증진기금 설치 등 4개는 소비자 보호에 있어 혁명적인 변화를 부를 수 있는 법안들이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피해 고객의 일부만 소송을 내서 이기더라도 소송을 내지 않은 다른 고객들까지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수십만명에게 한꺼번에 배상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회복이 어려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지금은 소송을 내서 이긴 소비자들만 피해 구제를 받고 있다.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동의의결제도 신속하게 소비자 피해를 구제한다는 점에서 서구 국가들이 이미 도입한 제도다.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재빨리 피해 보상에 나서면 공정위 등에서 행정처벌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에 대한 법안은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격론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갖고 있을 때 의결권이 15%로 제한돼 있는데, 정부나 국회는 5%로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금융 계열사를 지렛대로 활용해 다른 계열사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삼성·현대·동부·동양 등 4개 그룹이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