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을 먹이고 입힌 건, 8할이 神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귀양온 정약전은 이곳 사리마을에 살았습니다. 그는 유배 온 다른 양반들과는 달리 마을 주민과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서당을 열어 청소년을 가르쳤습니다. 그가 지은 '자산어보(玆山魚譜)'도 물고기에 밝은 장창대라는 흑산도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습니다."

27일 오후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사리에 있는 천주교 사리공소(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천주교 예배소) 앞에서 임송 선교사가 흑산도와 천주교의 첫 인연을 설명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중죄인 유배지로 이용되던 흑산도에 도착했을 때 정약전은 배교(背敎)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서 천주교를 알리고 우리말로 된 성가(聖歌) 가사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흑산도는 실제 거주하는 주민 중 35%가 천주교 신자이다. 전남 지역의 천주교 신자 비율은 평균 10%이다. 한때는 흑산도 인구의 80%가 천주교 신자였던 때도 있었다. 지금도 '미카엘 수산' '젬마 수산' 등 천주교 세례명을 상호(商號)로 쓰는 가게를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천주교의 영향력이 강하다. 면사무소 소재지인 진리의 흑산성당과 사리공소 외에 홍도·장도·다물도·대둔도 등에도 5개의 공소가 있어 천주교 신자들이 활발하게 신앙 활동을 하고 있다.

흑산도가 '천주교의 섬'이 된 것은 1950년대였다. 흑산도 출신인 조수덕이 고향에 돌아와 본격적인 전교활동을 시작했고, 지원 요청을 받은 성(聖)골롬반외방선교회가 인적·물적으로 돕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천주교 신자의 수가 늘어났다. 죽항리·장도·심리에 공소가 세워졌고, 1958년에 흑산성당이 완공됐다. 1956년 세례를 받은 이종암(78·시몬) 전 흑산성당 사목회장은 "성당 부지가 암반이었는데 신자들이 힘을 모아 깎아내고 배로 운반해온 화강암과 차돌을 날랐다"며 "넉넉지 않은 우리도 성당을 세우는 데 기여한다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천주교는 흑산도 주민에게 '신앙 이상'이었다. 파란 눈의 선교사들은 밀가루·우유·의류를 나누어 주었고, 마을마다 다리를 놓도록 도왔다. 1960년 문을 연 성모(聖母) 중학교는 전교생 무상교육·급식을 하며 인재를 키웠다. 소형 선박을 만들고 수리하는 '대건 조선소'와 마을에 전깃불을 공급하는 '대건 발전소'도 큰 도움이 됐다.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감귤나무를 보급한 것도 천주교였다.

다른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의 도시 이주로 신자가 줄고 고령화되는 것을 고민해온 흑산성당은 흑산도의 천주교 역사를 활용하기로 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신안군의 협약에 따라 사리공소 주위에 유배문화공원을 조성하고, 옛 성모중학교 건물에는 신안군이 '흑산도 생활사 유물전시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준용 흑산성당 주임신부는 "천주교회와 마을이 함께 성장하고 천주교 문화가 지역사회에 녹아들어온 흑산도 천주교의 전통을 살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