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하고 슬픈 이름, 어머니

최근 잇달아 언론에 보도되는 존속 살해. 어떻게든 이 '난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 때로 세상 흐름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소설이 이 '난제'를 다루고 나섰다. 해법은 없지만, 최소한 '문제'를 근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불행한 어머니의 초상

가정불화와 패륜을 다룬 소설은 전에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버지의 폭력과 가부장적 질서가 가족을 해체하거나 패륜을 부르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이 흐름이 올해 들어 바뀌고 있다. 거의 두 달에 한 권꼴로 '어머니'가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는 작품이 나오고 있다.

오현종 장편 '달고 차가운'에서 주인공 지용의 어머니는 이전 소설에 나오는 '끔찍한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다. 그녀와 지용의 관계는 철저하게 수직적이다. 아들 장래를 멋대로 결정했고, 지용이 삼수 끝에 대입에 실패하자 싫다는 그를 억지로 미국에 보낸다. 지용은 재수 학원에서 사귄 여학생이 생활고에 빠진 어머니의 강요로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의 어머니를 목 졸라 죽인 뒤에야 그것이 자기 어머니에 대한 복수심의 대리 만족이란 것을 깨닫는다.

지난 2011년 1등을 강요하며 골프채로 구타하는 어머니를 살해한 지모군 사건은 이런 '끔찍한 어머니' 서사의 배경이 됐다. 정찬 소설집 '정결한 집', 월간 현대문학 6월호에 실린 이신조 단편 '다른 소년'의 주인공들이 저지르는 모친 살해도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안보윤 장편 '모르는 척'에선 무기력한 모성이 패륜을 부른다. 이 작품에서 아들은 아버지가 돌연사하자 상해보험에 든 뒤 어깨를 탈구시키고 뼈를 부러뜨려 받은 보험금으로 생계를 꾸린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식탁을 정성스레 차림으로써 아들의 '잘못된 돈벌이'를 독려한다. 망가지는 몸을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아들은 가족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어머니를 둔기로 내려친다.

◇어머니는 가부장의 대안? 아니다

이런 소설들에서 어머니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가족 밖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가족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소설 속 어머니들은 아버지 못지않은 가모장(家母長)적 권위로 가족을 억압하거나, 아버지의 빈자리를 전혀 감당하지 못해 가족을 위기로 내모는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된다.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모성(母性)의 자리를 사회적 관계에서 찾는 작품도 등장했다. 지난 6월 출간된 천운영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에 수록된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은 '일하는 여성'이 일과 모성 사이에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을 파헤친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와 자식 간 갈등은 모성이란 본능과 어머니로서의 의무가 여성의 사회적 성취욕을 제약하면서 터져나온다. '국제아동돕기후원선교회 단장'인 여자는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지만, 자신의 두 딸에겐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딸들은 그런 어머니를 증오한다. "애들이 날 죽일까봐 무섭다"는 이 여성의 고백은 패륜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어머니 역할이 '워킹 우먼'인 자신을 사회적으로 죽게 할 수 있다는 고민의 토로다.

◇천국도, 지옥도 어머니 책임?

문학평론가 강유정씨는 '어머니 살해' 서사가 유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가족 내 헤게모니의 이동에서 찾았다. 강씨는 "어머니가 경제적 결정권과 자녀 양육권을 쥐면서 가정을 지옥으로도 천국으로도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며 "실패한 어머니가 되지 않는 길을 패륜이라는 반어적 방식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설가 오현종씨도 "소설가들의 관심이 가부장적 가족 질서 해체에서 가족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민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