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한 권쯤 ‘내 인생의 책’이 있다. 재미있어서, 소중한 지혜나 업무에 유용한 정보가 담겨 있어서, 아끼는 이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어서…. 그 한 권의 책을 최고의 책으로 꼽은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꼽은 바로 그 책은 그 사람과 묘하게 닮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을 닮은 책, 그 책에 대한 이야기.
“인성은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한 마음은 커뮤니케이션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신비의 마법이다.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행복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출 때 아름다운 ‘성품’을 갖게 될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 기법> 들어가는 글 中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단, 한 번 읽은 책은 반드시 120% ‘내 것’으로 만들고 만다.”
삼성생명 WM사업부장 윤태경(46) 상무는 ‘내 인생의 책’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꼽았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담은 실용서로, 커뮤니케이션 기법의 단계를 알기 쉽게 정리한 책. 각 장 말미에서는 내용을 요약하고, 실습문제와 모범답안을 실어 실생활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윤 상무는 이 교과서 같은 책을 “딱 내 취향이다(웃음)”며 맘에 쏙 들어 한다.
20년 가까이 금융시장에 몸담으면서 빠른 승진을 거듭한 윤 상무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책에서 찾는다. “주변에서는 나를 보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라고 칭찬하지만, 내 아이디어는 사실 모두 책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매우 세밀히 읽고, 그것을 체화시킨다. 그러다보면 그 안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그런 그는 몇 년 전 <마음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읽고 그간 자신이 품었던 생각들이 한 권에 모두 정리돼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3개월에 걸쳐 읽었다는 이 책에서는 여백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 그 나름의 살을 붙인 메모로 각 장마다 빽빽하다. “한 번 읽고 돌아서는 일은 없다. 필요한 부분은 발췌해 파워포인트 자료로 만들어둔다. 직원들과 공유하기도 하고, 사내 강의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윤 상무는 <마음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 기법>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실제로 ‘소통’을 리더의 첫 요건으로 꼽는다. “대화의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말을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는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연애하듯이’ 대화할 것을 주문한다. 상대가 “싫다”고 말해도 사실은 “좋다”는 의미임을 캐치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어떻게? 방법은 간단하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비로소 상대방 마음이 보이고, 나 역시 그에게 마음으로 느낀 그대로를 이야기하게 된다. 몸으로 느낀 그대로를 말하라. 그것이 상대를 배려한 진짜 커뮤니케이션이다.”‘마음 대 마음’을 강조하는 윤 상무의 철학은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문제. “어렵지 않다. 애초에 자신만의 ‘틀’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런 편견 없이 상대를 볼 것. 그냥 그 사람 자체를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그러므로 그의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상대의 사소한 면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회사 동료뿐 아니라, 고객에게도 마찬가지.
마음 대 마음으로 소통하기 위해 매순간 노력한다는 윤 상무. 그가 주도한 사내 ‘마인드맵’ 프로그램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하나의 서버로 각 지역에 흩어진 직원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마인드맵 프로그램은 11월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 이로써 윤 상무는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폭을 한 걸음 더 넓힌 셈이다.
한덕택 | 운현궁 및 남산골한옥마을 예술감독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신명호 저, 돌베개
“유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창조했던 수많은 문화 중에서도 왕실 문화는 그 정수에 해당한다. 왕실 문화는 왕과 왕비 등 지배자만의 문화가 아니라, 그것을 직접 창조한 수많은 장인과 지식인들의 피와 땀이 종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유교 통치 문화의 정수는 제도나 법규보다는 왕과 왕비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치와 외교로 대표되는 왕의 공식적인 삶은 조선시대의 통치문화였고, 왕과 왕비의 혼인·장례·제사 등은 당시 국가 전례의 핵심이었다. 왕과 왕비를 위한 궁궐·왕릉·종묘는 최고의 건축물이며, 이곳에서 시행되던 각종 의식·무용·음악 등에는 당대의 문화 역량이 종합되었다.”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저자의 말 中
“내게는 바이블 같은 책이다. 이 책을 만났을 때 갈팡질팡 미로게임에서 고속도로를 탄 기분이 들었다.”
지난 15년간 전통문화기획자로, 전통문화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한덕택(47) 예술감독은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를 ‘내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는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중심축을 이룬 궁중문화 교양서로, 왕과 왕비의 생활을 비롯해 각종 궁중 의례에 대해 흥미롭게 다룬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한 예술감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책을 즐겨왔다. 그러나 전통문화와 관련된 지금의 일에 뛰어들면서부터는 자연히 역사나 신화, 문화 콘텐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졸업 직후부터 줄곧 공연 관련 일을 해온 그가 본격적으로 전통문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부터다. “문화산업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며 몇몇 선후배와 의기투합, 전통문화에서 그 답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걸맞은, 제대로 된 ‘궁궐 프로젝트’를 궁리했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각종 이벤트가 잇따라 열리던 1999년, 한 예술감독은 ‘세종대왕 즉위식’을 기획하게 된다. 당시 이는 1600여 명이 동원된 대규모 행사로 많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전통문화와 관련한 공연 기획에서부터 연출, 해설까지 도맡아 1인3역의 열연을 펼쳤다. 운현궁과 남산골한옥마을에 둥지를 틀고 한 해 평균 무려 200여 회의 공연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한 예술감독은 궁중문화에 대해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궁중문화에 대한 교양서가 매우 드물었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서도 모두 원전으로 어렵게 봤다. 그럴 때 만난 이 책은 내 가려운 곳을 긁어준 반가운 존재였다.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내 지식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체계화할 수 있었다.”
그런 한 예술감독은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가 전문가나 업계 종사자에게만 유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땅에서 생활하는 이라면 누구나 자기의 뿌리를 알 필요가 있다. 국제화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자기정체성이 있어야 단단할 수 있다.” 그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덧붙인다. “하다 못해 경복궁 구경을 가도, 이런 책을 읽고 가는 것과 읽지 않고 가는 것은 무척 차이가 크다. 읽은 사람은 우리 문화에 한발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정도의 공부는 이 나라를 사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한 예술감독은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전통문화를 무조건 ‘올드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을 경계한다. 대신 전통이 가지는 효용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 과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 전통문화의 현대화·대중화·세계화다. 전통예술을 계승하고, 그것의 가치를 확대하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남진 | 패션디자이너 <불안> 알랭 드 보통 저, 은행나무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불안> 中
“이 책의 붉은색 표지가 마치 신호등의 정지신호 같았다. 인생의 속도를 한 템포 늦추라고 말하는 듯했다.”
천연염색 옷감과 가죽을 이용한 ‘오리엔탈 모던’ 스타일의 독특한 의상을 만들며, 각계 골수팬들(!)을 거느린 김남진(48) 디자이너. 그가 고른 인생의 책은 심리에세이 <불안>이다. 철학·문학·예술의 흐름과 함께 인간이 느끼는 불안이란 감정을 깊이있게 탐구한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지난 2011년.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였다. 붉은색의 강렬한 표지와 그 위에 적힌 ‘불안’이란 글자는 그의 걸음을 붙잡았다. 마치 신호등의 적신호처럼.
그리고 한달 후, 일이 터졌다. 2종의 암 진단을 받게 된 것. 상황은 심각했다.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보낸 지난 2년여 시간은 자연히 그에게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보여주었다.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다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불안을 가만히 곱씹어 보게 됐다. 그가 말하는 불안이란 것은 결국 인간 본연의 것이었다. 불안이야말로 자기 삶에 대한 애착,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것. 그렇다면 그 불안은 분명 행복한 불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불안은 그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청신호가 되어주었다.
“내 안의 것을 다 내려놓으려 애썼다. 모조리 끄집어내 버리고 나자 새것이 차올랐다. 그때부터는 두렵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해 보고 싶은 일, 가보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 등을 찾아 오히려 더 열심히 움직인 그를 아무도 환자로 보지 않았다. 병마와 싸운 지난 ‘안식년ʼ 동안 그는 여태까지의 인생을 반추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후회가 많았다. 내 삶을 남에게 더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더 차분히 아껴야 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그것이 향기가 되어 비로소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김 디자이너의 지인들은 종종 곤지암에 있는 그의 작업실 ‘목가’에 들러 위안을 얻는다. 고통의 시간 후 걸러낸 그의 깊은 인생철학이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다. 마치 그가 만든 옷처럼.
김 디자이너에겐 일이나 예술도 다르지 않다. “생활과 함께 가는 게 예술”이라는 신념이 그에겐 있다. “나는 몸을 가리는 옷보다 자신을 표출하는 옷, 그것으로써 위안이 되는 옷을 만들고 싶다. 이사갈 때 장롱 속에서 가장 먼저 챙기는 옷 말이다.” 뜻이 통했는지, 한번 그의 옷을 입은 이들은 오랫동안 그와의 인연을 이어가곤 한다. 그가 정성으로 만든 새옷을 입을 때마다 장문의 문자메시지로 고마움을 전하는 이들도 있어 그에게 감동을 준다.
김 디자이어는 오는 10월 중순이나 11월을 즈음해 그가 가꾸는 인왕산 수성동계곡 아래 아주 작은 갤러리 ‘서촌재’에서 의상과 장신구 일체를 전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쾌유와 복귀’의 값진 의미가 깃든 이번 전시가 상처받고 지친 이들에게 또 한 번의 안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