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여자의 화사한 스커트에서 온다면, 가을은 남자의 중후한 트렌치코트에서 온다. 단언컨대, 이 계절에 트렌치코트만큼 남자를 돋보이게 할 패션 아이템은 없다. 트렌치코트를 입지 않은 채 가을을 보내는 남자, 모두 유죄다.
트렌치코트의 시작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rench(참호)란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트렌치코트를 걸친 최초의 모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의 군인들이었다. 넓은 옷자락을 손쉽게 여밀 수 있는 기다란 벨트와 견장을 달 수 있는 어깨장식, 수시로 풀었다 조일 수 있는 소매끈 같은 요소를 찬찬히 뜯어보면 얼핏 군복이 연상되기도 한다.
전쟁의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낸 이 강인한 옷은 이후 우수한 기능과 멋스러운 디자인을 인정받으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자연히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다. 패션칼럼니스트 김은정은 저서 <옷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월과 함께 무수한 변화를 겪고 살아남은 옷은 고유의 가치가 있다. 트렌치코트는 혁신적인 변화를 가해도 체통을 잘 지킨다. 트렌치코트를 특징 짓는 요소들이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해체되고 색이나 길이, 디테일이 요동을 쳐도 트렌치코트는 변함없이 그 정체성을 유지한다.”
트렌치코트 최고의 가치? 그것은 어떤 차림에도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데 있다. 슈트에서부터 찢어진 데님 바지, 하다못해 원색의 트레이닝복에 이르기까지 어떤 옷과 함께해도 본분을 잃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트렌치코트는 남자의 옷장에서 빠져선 안 된다. 멋을 부리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지적이고 중후한,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속 깊이 정열과 애수를 간직한 듯한 분위기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만의 특권이라 할 만하다. 이것이 비록 여자들의 드라마틱한 선입견이라 할지라도, 매혹적인 게 사실이다. 그 옛날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가 그랬듯이.
사실,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험프리 보가트를 세기의 매력남으로 만든 팔할은 그 특유의, 깃을 빳빳이 세운 트렌치코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그가 살아 있다면, 어쩌면 그 유명한 대사는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인의 눈동자 대신 “당신의 트렌치코트에 건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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