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 중의 쿤데라는 '농담' '소설의 기술'

전집 완간을 계기로 10명의 쿤데라 전문가·번역가·소설가에게 물었다. 당신이 꼽는 쿤데라 최고의 작품은 무엇인가. 이 결과가 대표성을 지니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하나의 경향을 보여줄 수는 있을 것이다. 참고로 자신이 번역한 작품은 선택하지 말도록 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책은 '농담'(소설)과 '소설의 기술'(에세이)이었다. 각 3표. 소설가 은희경은 장편소설을 쓰다가 막막해지면 '농담'을 한 번씩 들춰본다고 했다. "세련된 구성과 반어적 문체도 좋지만, 순정과 순정에 대한 야유가 동시에 독자를 공격한다"는 것. 시인 남진우는 "이 시대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인 쿤데라가 왜 쿤데라일 수밖에 없는지 말해주는 아름답고 장엄하며 슬픈 이야기이자 노래"라고 했다. 권은미 이화여대 교수('이별의 왈츠' 번역)는 "보편적 인간 실존 문제와 만나게 하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의 진면목을 엿보고 깨닫게 한다"고 했다.

'소설의 기술'은 일종의 소설 창작론. 소설가 이응준은 "나는 소설 쓰기가 힘들어지면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다. 그런데 소설가로 사는 것이 힘들어지면, 카프카에 대한 쿤데라의 산문을 읽는다"는 말로 이 책을 꼽은 이유를 밝혔다. "작가는 천국에서조차 이방인이어야 하며, 그의 조국은 '망명'이라는 사실을 감각하게 해 준다"는 것. "문학의 영역이 좁아지는 현대사회에서 그 변화에 항거하는 최후의 작가"(한용택·'만남' 번역), "아름답고, 가슴 뛰게 만들고, 꿈꾸게 만드는 책"(방미경·'농담' '우스운 사랑들' '삶은 다른 곳에' 번역)이라고 했다.

7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2명의 지지를 받았다. 소설가 김연수는 "이 작품이 출간된 후에야 1980년대 한국 사회는 태도와 취향의 소설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대 박성창 교수는 "쿤데라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작품"이라면서 "소설의 위기에 맞서 소설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렸기에 소설의 안위를 걱정하는 독자라면 피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웃음과 망각의 책'(소설)과 '배신당한 유언들'(에세이)도 한 명씩 꼽았다. 김병욱('불멸' 번역)씨는 '웃음과 망각의 책'에 대해 "음악적 구성 예술로서의 소설의 극치"라면서 "이 작품이 없었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불멸'도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배신당한 유언들'은 작가·작곡가·지휘자 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이 남긴 위대한 유언을 좇는다. 백선희('웃음과 망각의 책' '자크와 그의 주인' 번역)씨는 "단연코 이 책"이라면서 "유럽의 음악사와 소설사의 큰 흐름을 짚어내며 소설 예술에 대한 성찰을 펼쳐보이는 고급한 에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