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쇠로 와인 잔·샐러드 볼 만들었더니 불티나요"

경남 거창 두부자공방은 경남무형문화재 제14호 이용구(77)씨가 전통 놋그릇을 보존하던 곳이었다. 구리와 주석을 섞은 합금을 불에 달궈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은은한 황금빛 놋그릇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요즘도 놋그릇 쓰는 사람이 있나 싶을 만큼 스테인리스와 도자기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지만 두부자공방은 바쁘다. 이씨의 막내아들 이경동(47)씨와 아내 김순영(41)씨가 2005년 공방을 물려받으면서 명맥을 잃어가던 놋그릇을 현대식으로 부활시킨 덕분이다.

3억원에 불과했던 공방의 한 해 매출액은 2010년 이후 15억원대로 급증했다. 놋그릇은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인천공항면세점에선 지난해 7월 이후 매달 700만원어치가 팔린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에 진출, 포크와 스테이크 접시 등 서양식 식기로 개발한 제품을 납품한다. 아내 김씨는 "주로 각국 외교 공관에서 여는 파티용 식기로 사간다"고 전했다.

1995년 이씨 부부가 결혼했을 때만 해도 공방은 옛 대장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징은 1개 5만원, 꽹과리는 1만2000원에 팔며 겨우 생계를 이었지요. 절이나 무속인에게 물건을 대는 중개상이 주 고객이었어요." 이씨가 전통 장인(匠人)인 아버지 밑에서 일하며 받는 월급은 100만원에 불과했다.

놋그릇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부산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특산품 특별전 이후다. "탁자 두 개에 공방에서 만든 징, 꽹과리와 밥그릇, 수저 등을 진열했어요. 사람들이 외면했죠. 한 50대 여성은 '명절만 되면 지푸라기로 놋그릇 닦느라 진절머리가 났다'며 혀를 내둘러요."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특별한 사람이나 제삿날에 쓰는 유기가 아닌 실생활에 필요한 유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2002년부터 실험에 들어갔다. 김씨는 서울 청담동, 인사동을 돌며 도자기나 스테인리스로 만든 식기의 디자인을 유심히 살폈다. 거기서 영감을 받아 유기에 맞게 새로 디자인을 하면 남편 이씨는 견본품을 만들었다. 샐러드 볼, 포크, 컵, 스테이크용 칼, 와인 잔 등의 견본품을 들고 김씨는 백화점, 도자기 전문점, 시장 그릇가게를 돌았다. 김씨는 다도에 쓰이는 유기를 만들기 위해 부산에서 직접 다도를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개발해 상품화한 제품이 100여 종. "처음엔 티격태격했죠. 남편은 돈도 안 되는 영업용 견본품을 만들어달라고 하니 싫어했어요. 지금은 군소리 안 하고 만들어줍니다(웃음)."

놋그릇을 지푸라기로 닦던 건 옛날 얘기라고 했다. "거친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한쪽 방향으로 닦아내면 돼요. 수세미와 세제가 본격 보급되기 전이라 지푸라기로만 닦아야 한다는 오해가 생긴 거예요." 무겁다는 단점도 개선했다. 다 만든 놋그릇을 다시 기계로 깎아내 사용자가 불편을 느끼지 못할 만큼의 무게로 만들었다.

롯데 등 백화점에 입점한 건 2008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민속박물관 등에서도 이 부부의 놋그릇이 비싼 가격에 팔려나간다. 지난해 1월엔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놋그릇 가지런히'라는 문패의 전시 판매장을 열었다. 김씨는 "남편을 일류 작가로 만들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전통은 구식이고 촌스럽다고 무시할 게 아니라 현대적 미감으로 새로 개발하면 세계적인 명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