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사라지는 꼭두(상여에 붙이는 사람 모양의 인형) 되살려낸 '꼭두 엄마'

비 뿌리는 청계천을 따라 걷는 스무 살 여학생은 울고 있었다. 1970년대 초 어느 봄날이었다. 여학생은 원하는 대학에 떨어져 다른 학교에 다녀야 했고,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홀어머니는 결혼을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남자는 여학생보다 서른한 살이 많았다. 당시 해 질 무렵 청계천 주변엔 고물상들이 나와 물건들을 벌여 놓았다. 말이 고물상이지 종일 수집한 고물을 실은 손수레를 탁 엎어놓고 내키는 대로 값을 불러 파는 노점상이었다.

사람 냄새 나는 오래된 물건들은 외로운 여학생에게 푸근한 위안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물상도, 손님도 신경 쓰지 않는 한구석에서 학생은 무언가가 자신을 이끄는 듯한 영기(靈氣)를 느꼈다. 나무로 만든, 한복 입은 여자상(像)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꼭두박물관 김옥랑(61) 관장(동숭아트센터 대표)은 지난 2일 약 40년 전 처음 만난 '꼭두' 이야기라며 자기 앞에 놓인 두 뼘 높이의 목제 인형을 가리켰다. 다홍치마에 초록 저고리 차림의 목제 여성상은 듬직하고 씩씩해 보였다. "얘가 바로 걔예요. 청계천에서 처음 만난 꼭두요.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저는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방황하고 있었지요. 그때 왠지 먼지 범벅에 때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 아이가 눈에 들어왔고 꼭 구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꼭두'는 사람 모양을 한 형상을 통칭하는 말이다. 김 관장은 이 말을 주로 상여(喪輿)에 붙이는 사람 모양의 상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1970년대 처음 꼭두를 만난 후 김 관장은 미친 듯이 꼭두를 구하러 다녔다. 하나 둘 공들여 꼭두를 찾아다니다 보니 2만여 개를 모았다. 2010년엔 동숭아트센터 2층에 꼭두박물관을, 지난 5월엔 가회동에 분관 격인 '꼭두랑 한옥'을 열었다.

꼭두는 지난해 런던올림픽 때 영국 한국문화원 특별전을 계기로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꼭두를 눈여겨본 유럽의 큐레이터들이 주선해 김 관장의 꼭두는 지난달 26일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박물관을 시작으로 헝가리·벨기에·프랑스 등 모두 네 개 나라 박물관에서 유럽 특별전을 갖는다. 이 전시를 통해 상여 하나와 꼭두 140여 개가 유럽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달 말 독일 전시 개막 행사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김 관장은 "먼지 뒤집어쓰고 있던 꼭두를 하나둘 정성스레 살려 책꽂이에 꽂아둔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꼭두가 유럽에까지 가서 유명인사가 됐다. 잃어버릴 뻔하던 문화유산을 되살려 유럽 전시까지 하게 됐다니 뿌듯하다"며 웃었다.

◇상여에 달렸던 '꼭두'에 빠지다

김 관장은 청계천변을 방황할 무렵 만났던 사업가와 스물한 살 때 결혼했다. 결혼 후 지금까지 40년 동안 김 관장은 계속 꼭두에 빠져 살았다. 꼭두 공연을 하기 위해 1984년 '낙랑 극단'을 만들었고 1989년 복합문화공간인 동숭아트센터를 세웠다. 김 관장을 만나러 가기 전 전형적인 '사모님 관장 스타일'을 상상했다. 동숭아트센터 3층 관장실에서 만난 그는 예상보다 솔직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20대의 김옥랑은 청계천 고물상 일대를 돌아다니며 수소문한 끝에 자신을 묘하게 잡아끌던 나무 인형이 상여에 붙어 있었던 것임을 알아냈다고 했다.

당시 청계천변엔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한 한창기 선생, 국립박물관 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 같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사실 내가 처음 꼭두를 사모을 때만 해도 '꼭두'란 단어는 거의 죽은 상태였다. 민속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했고 여러 해를 연구한 끝에 '꼭두'라고 이 '아이들'을 불러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김 관장에 따르면 꼭두의 어원은 중국 한(漢)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행하던 인형극에 나오는 '곽독(郭禿)'에서 꼭두가 비롯됐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에선 '대머리 곽씨'라는 뜻의 '곽독' 캐릭터가 나와 웃기고 춤추고 노래하는 인형극이 크게 유행했다. 그러면서 '곽독'(중국어 발음은 '궈투')이 인간상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자리 잡았고 이 단어가 한국에까지 전파돼 '꼭두'가 됐다. "흔히 쓰는 인형(人形)이란 단어는 일본식 표현이라고 해요. 일제강점기에 인형이 꼭두를 대신하면서 꼭두는 '남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안 좋은 어감을 지닌 '꼭두각시'라는 말로 주로 쓰였죠."

◇"죽음을 고민했더니 삶이 보이더라"

김 관장은 예전 얘기를 하면서 수장고에서 가져온 꼭두 10여개를 하나씩 꺼내어 보여줬다. 그러면서 꼭두를 '이 아이' '저 아이'라고 불렀다.

"시집간 후 낯설었고 외로웠어요. 그럴 때마다 꼭두에게 의지했지요. 젊었을 땐 방에 있는 책꽂이에 꼭두를 꽂아놓고 불을 켠 다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널 살려줄 테니까, 내가 힘들 때 네가 살려다오' 같은 이야기들요. 그러면 우스꽝스럽고 친숙해 보이는 꼭두들이 '그래, 그래' 하고 답하는 것 같았죠. 꼭두는 이십대 때처럼, 나에게 죽음을 고민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게 했어요."

꼭두의 역할은 죽은 사람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것이다. 정해진 모양은 없지만 상여에 달아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키가 20~30㎝ 정도이다. 김 관장이 꺼내 놓은 꼭두는 여성과 남성이 고루 섞여 있었고 차림도 제각각이었다. 호랑이인지 사자인지 명확하지 않은 짐승을 타고 있기도 하고 두 손을 모으거나 한 손을 치켜들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등 자세도 다양했다. '상여' '저승' '죽음' 같은 으스스한 말과 가까운 사이인데도 얼굴은 하나같이 익살스러웠다.

꼭두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다. 길을 안내해주는 안내자는 주로 말을 타고 있고, 죽은 자를 지켜주는 호위 꼭두는 무기를 들고 위협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두 손을 모은 다소곳한 아이들은 저승길까지 시중을 드는 꼭두, 물구나무를 서거나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은 이별의 슬픔을 달래주는 재인(才人) 꼭두다.

죽은 자와 함께 묻는 부장품으로서의 인물상은 중국, 이집트 등 여러 나라에서 흔히 발견된다. 그러나 상여에 인물상을 붙이는 나라는 한국 외에 거의 없다. 부장품은 죽은 다음의 삶을 끝까지 따라가 지켜준다는 뜻을 지녔다. 한국의 꼭두는 다르다. 죽은 자를 끝까지 따라가지 않는다. 상가(喪家)에서 무덤까지 망자(亡者)와 동행했다가 다시 산 사람들의 세상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섞여 지낸다. 이번 독일 전시의 영어 팸플릿엔 꼭두를 '이미(already)'와 '아직(yet)'의 사이를 잇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꼭두는 죽은 사람보다는 산 자를 위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운 존재라기보다는 삶의 일부로 여겼다는 뜻 아닐까요." 김 관장은 꼭두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았고 공연 예술로 확장했고 '낙랑극단'을 만들었다. 그가 모은 꼭두는 대부분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20세기 들어 장례 의식이 현대화하면서 상여에 달 꼭두는 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 떠나고 나라가 꼭두 거뒀으면"

꼭두들의 첫 해외 나들이는 2007~2011년 있었던 미국 순회 전시였다. 김 관장은 당시 꼭두를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비행기에 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먼지 구덩이에서 하나씩 찾아낸 애들이 미국에 간다잖아요. '너 참 출세했다' 싶었죠. 이번에도 독일 박물관에서 보니까 애들이 인물이 다 훤하더구먼요. 유럽 사람들은 무엇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섞여 있는, 길지 않은 운구(運柩)의 시간을 위해 이토록 다양한 꼭두를 만들었다는 데 관심을 가지더군요."

미국 전시가 시작된 2007년부터 5년 사이 김 관장의 인생은 크게 흔들렸다. 2007년 학력 위조 사건이 불거졌고 2009년엔 남편이 세상을 떴다.

김 관장은 "내 이야기를 하면서 학력 위조 이야기를 쏙 빼놓는다면 비겁한 짓이 될 것"이라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세상이 다 등을 돌린 것처럼 괴로운 시기였어요. 하지만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학력 위조가 드러나 비난을 받던 때보다 학력을 속이고 거짓말하며 살았던 세월이 더 괴로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가까운 이들에게 '꼭두 엄마'라고 불리는 김 관장이 세상을 뜨는 날 데려가고픈 꼭두는 없을까. 그는 "없다"고 했다. "꼭두는 살아 있을 때 나에게 위안이 되어준 걸로 충분히 역할을 다한 거죠. 죽으면 그런 위안 필요 없잖아요. 얘네는 산 사람들의 세상에 계속 남아 있어야지, 어떻게 데리고 가겠어요. 바람이 있다면 우리의 소중한 유물인 꼭두를 국가에서 거두고 잘 보살펴주었으면 해요."

김 관장은 "내가 꼭두를 살렸고, 그 다음엔 꼭두가 나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꼭두와 내가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죽음을 고민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40년 동안 꼭두를 모았다는 김 관장은 그렇다면 '삶의 의미'를 찾았을까. 그는 말했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꼭두를 보며 죽음이란 존재를 매일 상기하면서 저는 삶을 온전히, 더 치열하게 살 수 있었어요. 삶을 온전히 살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졌고요. 그러고 보면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삶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진실을 꼭두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