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포커스] 보조금이 투명해지면… '호갱님(호구+고객)' 없는 세상 올까

휴대폰 유통 방식을 바꾸는 '단말기 유통 개선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동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 등 관련 업계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부 휴대폰 제조사와 통신사들은 "과도한 규제다" "되레 실구매가를 올릴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왜 바꾸려 하나

논란이 되는 법안은 지난 6월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이 발의한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회기 내에 이 법안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은 의원 입법이지만, 사실 미래창조과학부가 오랫동안 연구·추진해온 방안이다. 미래부 생각이 많이 포함돼 있어 관련 업체들은 사실상 '정부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법안의 핵심은 '모든 소비자에게 같은 보조금 혜택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비싼 휴대폰을 살수록, 자주 바꿀수록 휴대폰 보조금을 많이 받는 현재 유통 시스템을 고치자는 것.

예컨대 20만원짜리 저가 휴대폰을 사서 5년 넘게 쓰는 60대 할머니에겐 휴대폰 보조금을 한 푼도 안 주면서, 70만원짜리 최신폰을 1~2년마다 바꾸는 20대 직장인은 교체할 때마다 20만~30만원씩 휴대폰 보조금을 받는 현재의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구조 탓에 현재 우리나라 휴대폰 판매 상황이 왜곡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휴대폰 평균 가격(공급 기준)은 세계 평균의 2.5배인 415달러(44만6500원)에 달하고, 휴대폰 교체 주기는 16~18개월로 세계에서 가장 짧다. 고가 휴대폰일수록 음성적으로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통신 요금이 비싸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매월 요금 고지서에 합산돼 나오는 휴대폰 분할 판매 대금 때문이란 인식도 깔려있다.

◇어떻게 바꾸나

법안 내용에 따르면, 이동통신사는 휴대폰 보조금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휴대폰 판매점은 이를 매장에 게시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어느 매장에서 휴대폰을 사든, 똑같은 보조금을 받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이통사들은 신규 가입보다는 번호 이동 고객에게 더 많은 보조금을 줘왔지만, 앞으론 이런 차별도 금지된다.

고객이 별도로 신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자신의 예전 휴대폰을 그대로 쓸 경우엔 보조금 대신 통신 요금 할인 혜택을 줘야 한다. 예컨대 보조금이 27만원이라면 휴대폰 보조금을 안 받는 고객에겐 24개월간 매월 1만1000원 정도씩 통신 요금을 할인하는 것이다. 이동통신사의 보조금뿐만 아니라, 휴대폰 제조사들이 판매점에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 등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휴대폰을 오랫동안 쓸수록 이익이기 때문에 휴대폰 교체 주기가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60만원 이상 고가 스마트폰이 많이 팔리는 현상도 상당 부분 누그러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과도한 규제", 정부 "관철시킨다"

일부 휴대폰 제조사와 통신사는 "과도한 규제"라며 역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특히 휴대폰 보조금 대신 요금 할인을 받도록 한 조항에 반발하고 있다. 법안대로라면 모든 이용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셈이어서 보조금이 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고객들이 휴대폰을 살 때 내는 '실구매가'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등 휴대폰 제조사들은 판매 장려금을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한국에서 한 대당 판매 장려금을 얼마씩 준다는 내용이 공개되면, 해외 이동통신사들도 이를 근거로 같은 장려금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 전략을 옥죄면, 판매 장려금을 지급하지 않는 애플 같은 외국 제조사들이 상대적 이득을 얻게 된다는 주장이다.

휴대폰 판매점들은 휴대폰 판매량 급감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생계형 영세 매장은 도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동통신판매인협회 박희정 위원장은 "휴대전화 판매량이 줄어도 다른 품목으로 보완할 수 있는 대형 마트에 비해 생계형 대리점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법안을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래부 홍진배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왜곡된 유통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선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 제조사가 해외 업체와 역차별받는다는데, 국내 업체들도 출고가를 90만~100만원에 내놓고 판매점에 10만~20만원씩 장려금을 지급할 게 아니라 애플처럼 구형 모델의 출고가를 낮추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