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50개州 최고봉 정복 눈앞에 둔 교수

"나이 서른에 온 가족을 데리고 건너와 부딪힌 미국 생활은 막막했어요. 힘들 때마다 산을 찾았죠. 소위 '힐링'이 됐어요. 어느새 미국의 높다는 산은 안 가본 데가 없더군요."

내년 개교를 앞둔 미국 유타대학교 송도 분교의 한인석(55) 총장 내정자는 전문가 수준 산악인이다. 이르면 올 11월, 그는 아시아인 중에서는 최초로 미국 50개주(州) 최고봉(最高峰)을 모두 오른 산악인이 된다.

2005년 유타주 최고봉인 '킹스피크(4120m)'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09년 북미대륙 최고봉이자 알래스카주에서 가장 높은 '매킨리(6194m)', 캘리포니아주의 '휘트니(4421m)' 등을 거쳐 올해 8월 10일 몬태나주 최고봉인 '그래닛(3901m)'에 오르면서 49개주 최고봉을 등정했다. 오는 11월 하와이주 최고봉인 '마우나케아(4205m)'에 오르면 50개주 등정 기록을 세운다. 미국 50개주 최고봉 중에는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高山)이 13개나 돼 전 세계적으로 240여명밖에 세우지 못한 기록이다.

한 총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봉우리로 미국 와이오밍주의 '가넷피크(4207m)'를 꼽았다. 근처 도시에서 산의 초입으로 가는 데 자동차로 8시간, 그다음 말을 타고 45마일을 더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정상까지 가려면 3박 4일쯤 더 걸린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산맥이 끝도 없이 이어져요. 대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 들죠."

그가 미국 고산과 인연을 맺은 건 1980년대 유학 시절이다.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선천적으로 뼈가 쉽게 부러지는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휠체어 없이는 못 사는데, 한국은 '장애인 보조시설'이란 개념도 없던 때였죠. 반면 미국은 1960년대부터 장애 아동 지원 정책이 있었어요." 한양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9년 가족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1993년 워싱턴주립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70~80년대 미국 유학을 한 사람 대부분은 고국에 돌아가 교수가 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저는 딸아이를 위해 미국에 남겠다고 결정했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요."

그때부터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숨쉬기 어려운 3000m급 봉우리를 오르다 보면 숨이 턱턱 막혀요. 그런데 정상까지만 가면 그런 '고산증'이 탁 사라지더군요. 살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이것만 넘기자, 그러면 괜찮을 거야' 하다 보니 고비를 극복하는 요령을 터득했죠." 그의 딸은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유타대 송도분교 준비를 위해 2011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1년 앞으로 다가온 개교 때문에 몹시 바빴다. 한 총장은 "한국의 취업난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은 인재들이 제대로 된 글로벌 교육을 받지 못해 한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송도분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미국 등 해외에서 연구·취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본교보다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본교의 선발 기준은 토플 점수(IBT 기준) 80점 이상인데, 송도분교는 88점 이상"이라며 "오히려 송도캠퍼스 입학이 어려운 만큼 학생들 수준도 더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총장은 요즘도 매주 주말마다 인천 송도 근처 야산을 다닌다. "한국에 돌아온 만큼 다음 목표는 한반도 8개도(道) 최고봉 도전이에요. 하루빨리 통일이 돼 북한 명산들도 찾아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