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태풍없어 大豊… 배추 19%·배 37% 생산 늘 듯

#1. 13일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신두리 앞 들판. 마치 바리캉으로 머리를 깎듯이, 누렇게 익은 벼가 가득한 1만2000여평 논을 한 농민이 콤바인(벼 수확 기계)으로 깎아 나가며 수확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온 오의식(70)씨는 "올해 벼 이삭이 패는 시기인 8월 초·중순에 날씨가 좋아서 벼가 잘 여물었다"며 "지난해와 달리 태풍이 없고 기후도 좋아서 수확량이 15%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고추와 콩도 경작하고 있는데 올해 날씨가 좋아서 다 풍년"이라며 "올해 열매가 열리는 곡식은 농사가 다 잘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2. 같은 날 충남 천안시 왕림리의 6000여평 배밭에서도 20여명의 농민이 배를 따서 상자에 담고 있었다. 사람 키보다 조금 작은 배나무에는 누런 봉지를 씌워 놓은 배들이 가지마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매달려 있었다. 배밭 주인 조항현(39)씨는 "올해는 배나무에 물 주는 시설을 한 번도 안 틀었는데 볕이 좋고 비도 알맞게 쏟아졌다"고 말했다.

수확 철을 맞은 논과 들판에선 모두 대풍(大豊)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하다. 이달 초순 제주와 남해안 일부 지역을 스쳐간 태풍 다나스를 제외하면 4년 만에 태풍 피해가 없어, 곡물은 물론이고 과실 수확도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공급량 증가에 따른 일부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풍년 속에서도 시름에 잠기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올해 쌀 생산량을 423만~440만t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401만t보다 5.6~9.7% 증가한 수치다. 김장하는 시기에 수확하는 가을배추 생산량도 155만t으로, 지난해보다 19.7%, 겨울 배추는 19.1% 각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사과와 배도 작년보다는 각각 6.6%, 37% 생산량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풍작이 농민들에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벌써부터 일부 농작물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13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배추는 10㎏(특등급)에 5250원으로, 지난해 1만471원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과(후지·특) 가격도 15㎏에 3만1000원으로 47% 하락했고, 배는 48% 떨어졌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쌀은 아직 본격적으로 수확이 되지 않아 가격이 형성되지 않았지만 10월 중순 이후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배추의 경우 지난해와 올여름 높은 가격이 유지되면서 가을배추 재배 면적이 지난해보다 11% 증가한 1만4827㏊에 달한다.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배추 반입 물량은 지난해 9월보다 20% 늘면서 가격은 12% 정도 떨어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서대석 엽근채소관측팀장은 "가을배추 출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다음 달에는 출하량이 작년보다 20% 늘어나면서 가격은 45% 이상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며 "앞으로 기상이 좋아 가을배추 작황이 더 개선될 경우 가격 하락 폭이 예상보다 클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다음 달 첫째 주를 기준으로 4인 가족의 김장 비용이 지난해보다 최대 30% 가까이 떨어진 20만~22만원 정도면 될 것으로 이마트 등 대형마트 측은 예측했다. 배추 외에 무와 고춧가루 가격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지금의 배추 시세 하락 추세가 계속 이어지면 2년 전 배추 값 폭락으로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었던 사태가 재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