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고집하지 않은 로열 코펜하겐, 名品됐죠"

북유럽 최대 규모 디자인박물관인 '디자인 뮤지엄 덴마크(Design Museum Denmark)'의 애나 루이스 소머(52) 관장이 한국에 왔다. 120년 역사를 가진 이 박물관은 덴마크뿐 아니라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등지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 공간. 2014년 동북아 지역 '덴마크 디자인 순회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첫 전시 장소로 서울을 택했다. 한국에서 가구·생활용품을 중심으로 북유럽 디자인이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소머 관장은 한국적 디자인 트렌드를 전시에 반영하기 위해 디자이너 정구호(51) 제일모직 전무에게 만남을 청했다. '구호'라는 브랜드로 대중에게 친숙한 정 전무는 컬렉션 의류 브랜드 '헥사바이구호'로 파리와 뉴욕에 진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최근 주한 덴마크 대사관에서 만났다.

소머 관장은 "한국의 백화점 가구 코너를 북유럽 가구가 점령할 만큼 한국에서 북유럽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했다. 그는 물건의 기능과 사회적 의미를 중시한다는 점을 덴마크 디자인의 특징으로 꼽았다. "디자인은 일상생활에 존재해야 합니다. 외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제품의 기능과 내구성이 중요하고요. 이런 실용성 덕분에 한국에서 북유럽 가구가 사랑받는 것 같아요. 가구의 명성이 너무 크다 보니 다른 분야의 디자인이 묻히는 것이 아쉽지만요(웃음)."

두 사람은 '디자인에서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소머 관장은 "덴마크에서는 전통을 매우 강조하는 편이지만, 디자인스쿨에선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접목할지를 비중 있게 가르친다"고 했다. "로열 코펜하겐은 수백년 역사를 가진 디자인 브랜드지만 전통만 고수하지 않아요. 이 브랜드의 대표 라인인 블루 플루티드(Blue Fluted)는 한 디자인 스쿨 학생이 졸업 프로젝트로 만든 디자인이었죠.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응용하는 것도 젊은 디자이너들의 몫입니다."

소머 관장은 한국의 전통 공예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정 전무는 "디자이너들 사이 한국의 공예 전통이 계승되고 활용되는 곳은 도자기 분야 정도"라며 안타까워했다. "전통 공예의 명맥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지만, 최근 들어 외국 디자이너들이 한국의 전통 디자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활로가 생기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머 관장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정 전무는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미 포화 상태인 패션 디자인에서 벗어나 온라인 게임 캐릭터들의 의상 디자이너처럼 새로운 분야로도 진출하고 있다"고 했다. "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배워서 가질 수 있는 직업을 말해보라니 12개 정도 나오더군요. 현존하진 않지만 상상할 수 있는 직업을 말해보라고 하니 50개 넘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실제 이 아이디어로 새로운 직업을 가진 학생들도 있고요." 정 전무는 소머 관장에게 서울 삼청동 가구박물관, 통의동 대림미술관, 한남동 리움미술관, 동숭동 쇳대박물관 등에 가볼 것을 추천했다. 소머 관장은 "내년 서울에서 열릴 기획전이 양국 디자이너들의 교류에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