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품시장이 IT보다 커… "해외로 나가야 미래있다"

1958년 스물세 살의 대학 4학년 실습생 신분이던 김재철(78) 동원그룹 회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원양어선인 지남(指南)호를 타고 한국인 최초로 적도를 넘었다. 지남호는 미국 원조자금 32만달러로 인수한 13년 된 중고 배였다.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던 선원들은 고향의 흙을 한 줌씩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남태평양 사모아항(港)을 기지 삼아 김 회장은 지남호 선원들과 참치를 잡았다. 그때부터 참치잡이 원양어업에 뛰어든 김 회장은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 참치 수출에 나섰다. 우리나라 식품산업의 해외 진출 1세대 경영인인 셈이다.

반(半)세기가 지난 지금, 여든을 앞두고 있는 김재철 회장은 다시 한 번 해외 진출에 전력을 쏟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일 서부 아프리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10번 항구에서 동원그룹의 자회사 SCASA의 준공식을 열었다. 참치 가공공장이다. 1차 산업 상품인 참치 수출에서 2차 산업 상품인 가공 식품으로 해외 진출의 급(級)을 한 단계 올렸다.

"한국 식품산업이 국내에 머물러서는 미래가 없어요. 시장이 너무 좁아요. 세계로 나가야 길이 있습니다."

한국 식품산업의 원로가 밝힌 해외시장 진출의 당위성이다. 동원산업이 아프리카에 공장을 준공, 동원그룹은 5대양 6대주에 사업소나 공장을 가진 글로벌 식품기업이 됐다.

김 회장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무역협회장을 3기에 걸쳐 맡느라고 회사 일과 해외 진출에 신경을 제대로 못 썼다"며 "그동안 회사는 사실상 정체했다"고 말했다. 그가 회사 경영을 다시 꼼꼼하게 챙기면서 한 첫 번째 일은 2008년 미국 최대의 참치캔 회사인 스타키스트(Starkist)를 인수한 것이다.

"국내시장은 인구가 적어 시장이 작아요. 생산 원료조차 부족하죠. 답은 해외에 있어요." 실제 우리나라 인구 증가세는 꺾였지만 세계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1950년 24억9000만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2012년에는 75억명이 됐고, 2050년에는 92억명이 될 전망이다.

한국에서는 식품산업이 비(非)성장 산업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세계시장을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장 조사기관인 데이터모니터는 2012년 세계 식품 시장의 규모가 5조1742억달러라고 밝혔다. 2016년에는 6조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작년에 발표한 2013년 세계 IT시장 규모 3조78000만달러보다 훨씬 큰 시장인 것이다. 미래학자인 짐 데이토 하와이대학교 교수는 "장차 식품산업이 항공우주산업보다 더 각광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특히 아프리카 같은 신(新)시장을 중시한다. "아프리카는 우선 소비 시장이 큰 유럽과 중동에 가깝죠. 내수 소비가 크게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요. 게다가 정부가 직접투자에 대해 각종 혜택을 많이 주고 있어요."

물론 아프리카 진출이 쉽지는 않다. 도로, 항만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노동력도 한국이나 선진국보다 떨어진다. 김재철 회장은 "직원들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 아니겠느냐(It's Africa)'라고 격려한다"며 "어렵지 않으면 우리한테 기회가 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 회장의 시도는 일단 성공하고 있다. 해외 진출에 다시 박차를 가한 2008년 이후 동원그룹의 매출은 해외 부문의 성장으로 2007년 2조원에서 작년에는 4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최근 해외 진출을 강화하는 식품회사는 동원만이 아니다. 농심은 세계 80개국에서 팔리는 신라면을 필두로 해외 매출이 2008년 2억8000만달러에서 작년 4억4000만달러로 늘었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18%에서 24%로 늘었다. CJ제일제당은 동물 사료를 만드는 필수 물질인 라이신 생산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초코파이를 앞세운 오리온은 이미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섰다. 동서식품은 국내에선 인기가 꺾인 '프리마'를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 등 27개국에 수출하며 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김재철 회장은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는 저서를 통해 일찍부터 해외 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아직도 1년에 지구 한 바퀴는 돈다"라며 "멈출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