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 광한루. 몽룡과 춘향이 만나 사랑을 꽃피운 공간으로 문학사에 남았다. /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전북 남원은 판소리의 양대 산맥인 동편제의 태자리이고, '춘향전'부터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 주요 작품의 무대가 된 곳이다. 요즘은 지리산 둘레길이 인기를 끌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교보문고,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마련한 '길 위의 인문학' 답사단 50여명이 지난 12일 남원을 찾았다. 동서 교류를 위해 지난 5일 호남탐방단이 '안동의 양반문화'를 둘러본 데 이어, 이번엔 영남탐방단이 춘향전의 고향을 방문했다.
남원 광한루(廣寒樓)는 하늘나라의 정원을 엿보고 싶은 욕망으로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담아 만들었다. 조선 전기 대학자 정인지가 달 속의 미인 항아가 사는 전각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에 버금가는 승경이라 칭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돌, 나무, 흙, 꽃, 물, 다리, 누각이 이루는 조화에 감탄사가 나온다.
최기숙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누구를 만나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장소의 질이 결정된다"며 "광한루는 몽룡과 춘향이 만났기에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젊은 남녀가 주고받은 단 한 번의 눈길은 강렬한 불꽃을 일으키고 신분을 초월한 운명적 사랑으로 피어난다. 19세기 당대인의 사랑, 재치, 언어, 풍속 등이 폭넓게 수용된 '춘향전'은 광한루 없이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도시를 유독 깊고 고아하게 만드는 건 진안 백운산에서 발원해 남원벌 충적평야를 적시고 섬진강으로 안기는 요천(蓼川)이다. 천변에 여뀌꽃(蓼花)이 만발해 붙여진 이 지류는 높은 곳에서 보면 남원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연상시킨다. 이 은하수를 따라서 춘향묘(春香墓)를 향해 가는 굽잇길은 그대로 지리산의 웅장한 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전정희 문화해설사는 남원을 "사랑이 귀결되고 시작되는 도시"라며, "예부터 형제간(흥부전), 남녀 간(춘향전), 산 자와 죽은 자(만복사저포기), 이산가족(최척전)의 사랑 이야기가 골고루 창작됐다"고 했다. 대구에서 딸과 함께 찾은 박은주(40)씨는 "산세가 뛰어나고 풍류가 살아있어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