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작품이 괴물같다? 진짜 잔혹한 건 세상

‘7년의 밤’ ‘28’의 정유정(47) 작가와 ‘지구를 지켜라’ ‘화이’의 장준환(43) 감독은 최근 가장 뜨겁고 ‘센’ 작품을 내놓은 이들이다. 이들의 작품에선 피와 살이 튀고,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둡고 추악한 괴물성이 드러난다. 18일 오후 맥스무비 주최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특별 상영회 후 만난 두 사람은 관객들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어두운 작품에 비해 밝고 얌전한 인상이다.

장: "막상 날 만나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팀 버튼 감독 같은 스타일을 기대했는데 회사원 같은 사람이니까.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걸 영화에 풀어내는 편이다."

정: "나도 회사원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 작가 하기 전에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런 소설을 쓰지만 나는 아주 바르고 착한 사람이다(웃음)."

―잔인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장: "소설과 영화 모두 인간에 대한 탐구다. 그런 면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정: "내 소설이나 장 감독 영화의 잔인한 묘사는 현실 그것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괴물 혹은 괴물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장: "내 안에 괴물 같은 게 도사리고 있는 게 수시로 느껴진다. 평온한 시기에도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게 뭔지 계속 궁금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이상한 괴물을 안고 태어나는 건가? 길러지는 건가? 괴물을 어둠 속에 밀어놓고 살지만 캐릭터를 창조할 때 그걸 꺼내 쓴다."

정: "내가 궁금한 건 인간의 악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발현이 되느냐는 것이다. 내 마음엔 선과 악, 천국과 지옥, 혼란과 질서가 모두 있다. 괴물도 당연히 품고 산다. 그래서 캐릭터는 내 안에서 많이 나온다. 평소에는 외면했던 치졸한 부분에서 사악한 부분까지를 다 꺼내본다."

―희한한 생각은 주로 어떻게 떠오르는가?

장: "나른한 시간이나 멍하게 있을 때 재밌는 생각이 난다. 잠이 완전히 깨기 전이나 잠이 완전히 들기 전처럼. 그래서 일부러 낮잠을 자기도 한다. 그걸 적어놓으려고 머리맡에 메모지를 준비하기도 한다. '아, 하나 건졌다'라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는데 나중에 깨보면 별거 아닐 때가 많지만."

정: "새벽 3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면서 고딕메탈(메탈의 하위 장르로 주로 음산하고 우울한 음악)을 듣는다. 듣다 보면 캐릭터와 분위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길치'이기 때문에 지도를 그린다. 책 한 권에 스케치북 두 권을 쓴다. 장소를 장악한 다음에 인물을 배치하고 나면 이야기가 거기서 나온다."

―각각 서로의 장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가?

장: "'7년의 밤'만 보더라도 한 캐릭터에 여러 개의 층위가 있는데 이런 걸 영화로 표현하려면 그런 게 좀 생략이 되지 않을까.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고, 두세 시간 안에 이를 완성하려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 하지만 활자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나처럼 글자를 하나하나씩 읽어야 하는 사람은 몇 시간, 며칠이 걸려도 다 소화할 수 있으니까. 대신 영화에는 시각적 강렬함이 있다. 배우와 화면이 구현하는 명확함은 리얼리티를 뛰어넘는다."

정: "지난 10년간 영화와 TV를 전혀 보지 않았다. '지구를 지켜라'와 '화이'는 10년 만에 본 영화다. 이미지가 머리에 한번 박히면 내 상상력에 제한이 있을 것 같아서 안 본다. 내 소설이 시각적이라고 하는데, 그건 내가 독재적인 성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보여주는 것만 따라오라'는 것이지. 영상에서야 시체를 찍어서 보여주면 되지만, 나는 시체의 무게, 냄새, 늘어진 각도까지 다 글로 묘사해서 그 시체를 독자 앞에 턱 던져준다. 그냥 '시체가 있다'고 쓰는 건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장: "작업 과정은 행복한가?"

정: "남이 듣고 싶은 이야기, 좋아할 것 같은 이야기를 찾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다 대고 떠들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 걸 내놓으려는 욕망이 없으면 어떻게 버티겠나. 글 쓰는 것만 빼면 다 행복하다. 괴로운 행복 같은 것이다. 감독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감독님은 두 작품에서 모두 어머니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장: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보호해야 하는 존재인 동시에 나를 보호해주는 존재였다. 남자들은 강한 척하지만 속이 좁은 것 같다. '화이'의 석태(김윤석)도 매우 강해 보이지만 약한 구석이 많은 남자다. 세상을 구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여자일 것이란 말도 있지 않나."


☞장준환 감독

2003년 첫 장편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7만 명도 안 되는 관객만 들며 흥행에 참패했지만 무시무시한 상상력과 흡입력 있는 이야기로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그해 청룡상, 대종상, 영평상, 대한민국영화대상 등 연말 시상식의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10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사진·9일 개봉)는 21일 현재 2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정유정 작가

첫 작품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2007)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읽는 즐거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32만 부) ‘28’(16만 부) 등은 영화계에서도 탐내는 작품. ‘영화로 보고 싶은 원작’ 설문 조사 1위에 꼽힌 ‘7년의 밤’과 ‘내 심장을 쏴라’는 이미 영화화 작업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