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은 여러 가닥의 빛깔이다. 연잎의 초록이 빛을 받는 부분은 그 빛살이 하도 짙어 마치 눈 속을 빛의 페인트를 두껍게 발라 버린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래에서 잎을 바라보자면 영화 속의 미녀가 그 가볍고 밝은 녹색의 플레어를 날리며 짙은 초록의 핏줄이 보이는 각선미를 보이고 멋지게 툭 걸어 나올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인다.
빛깔이 저 하나의 잎사귀에 찬란한 옷을 입히기도 하고, 찬란한 미모로 사로잡기도 한다. 연잎은 고귀한 여인의 품격이다. 명품 옷의 블랙 라벨이라고 다 멋진가. 어느 명문가의 기품있는 여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녹색의 빛깔과 소박한 질감이면서도 그윽함을 안겨 주고자 한다면 세상의 가장 감각이 남다를 명장을 불러 저 어느 늪의 이름 없이 한철을 피어오를 연잎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게 해야 할 듯하다.
연잎을 빙 두른 그 생명을 에두른 선은 구름 같아 자른 흔적도 없이 생겨났다. 땅 위의 어느 의복 명장이 이런 복장을 만들 수 있겠나. 4대가 모여 이 연잎에 힘줄을 넣고 청자 빛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연잎은 하나의 줄기에 숨겨 올라올라 기어코 활짝 하늘을 향해 그 생의 의지를 뼈같이 뻗어 하나의 역으로 조립된 우산처럼 벌어진다.
보면 그 연잎은 다복하게 피어올라 아기 손등 같다. 어디 더러운 눈빛이 그 손등을 쳐다볼라치면 미끈하게 날아 떨쳐지고 말 것이다. 어느 비가 소슬 대는 날이면 연잎은 그 무구한 마음을 엿보게 된다. 비가 내려도 비는 비가 아니라 구슬이 되고 그 빛깔은 투명한 온 우주를 담고 또 담을 다이아몬드가 된다. 밤에 하늘에 별이 빛나듯 낯에도 연잎에는 별이 달린다.
나고 지고 순환하는 그 생명력은 물의 별이라고 한다면 그건 별처럼 길게는 아니지만, 더 긴 세월을 늘려 억지를 부리면 별만 못한 삶을 살고 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연잎 사이로 얼굴을 분홍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손을 오므린 것이 여기저기 보이지 않나. 연꽃은 그 존재가 부끄러움으로 시작하는 젊은 시절의 여성이다.
하나의 존재로 뻘밭에 그 인고의 세월을 살고도 아름다운 형태와 존재로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처녀 그대로다. 꽃은 꽃이라 비록 화려한 붉은빛을 뽐내지도 않고, 백합과도 같이 빛나는 환희의 옷을 입고 고급 호텔의 찬란한 빛을 받고 명품의 그녀 같지는 않지만, 그녀도 곧 꽃이라!
아는가, 그대는. 뻘밭에서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그 순수한 분홍빛이 모인 게 눈앞의 연꽃인 것을. 생산의 고통에 온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그 뼈를 주고, 그 피를 주고, 어느 이름 모를 뒷날 자신의 뼈는 묘지에서 숱처럼 검어진 그 순결한 마음이 바로 연꽃의 그 하얀 웃음 속에 분홍빛으로 피어나는 것을 아는가 그대는.
가만히 그친 바람 속에 저 깊은 뻘 속에 물은 말라도 그 해의 그 연잎은 마른 연잎이, 그 꽃대에 열매만 덩그런 속에서 말라버린 내 모습을 바라본다. 이럴 줄 알았을까, 이렇게 속을 줄 저 연잎은 저 꽃잎은 세월 속에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도 이 가을 너머, 또 저 추운 겨울 너머, 계절이 멀리 돌고 돌아 다시 오면 또 이런 세월의 야속을 견디고 다시 잎은 돋아 오르고, 꽃은 피어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