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가 몸을 숨겼던 바르트부르크성.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 쓴 책상이 남
아 있다. / 독일관광청·제이엘아트 제공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는 평생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다. 독일 튀링겐주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난 바흐는 바이마르, 괴텐, 라이프치히를 옮겨 다녔지만 독일어가 들리지 않는 곳엔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바흐는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말만 듣고도 상상력을 발동해 '이탈리아 협주곡'을 만들었다. 오늘날 바흐 음악은 지구촌 어디든지 돌아다닌다. 심지어 미국 항공우주국이 띄운 우주탐사선 보이저 2호를 통해 바흐 음악은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다. 바흐는 붙박이로 살았지만 그의 음악은 떠돌이처럼 자유롭다.
바흐가‘마태수난곡’을 비롯해 숱한 종교음악을 바친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바흐의 '마태수난곡' 초연된 성토마스 교회
전 세계에서 바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라이프치히와 아이제나흐를 꾸준히 찾아온다. 최근 방송인 황인용씨와 김이곤 포니정홀 음악감독이 예술 애호가 10여명과 함께 바흐 음악 기행에 나섰다. 공연기획사 제이엘아트가 만든 모임 '호모 아카데미쿠스'(cafe.daum.net/ jlart2010)의 첫 예술기행이었다.
어느덧 일흔네 살인 황씨는 파주에서 음악 감상실 '카메라타'를 10년째 운영하는 클래식 전도사로 이름이 높다. '호모 아카데미쿠스' 일행은 10월 2일부터 7박 8일 동안 바흐의 고향을 비롯해 신학자 루터, 문인 괴테와 실러, 음악가 리스트, 멘델스존의 족적도 둘러봤다. 일행은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초연된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를 찾아갔다. 바흐가 교회 구조를 이용해 입체 음향을 살렸던 오르간이 두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태복음 26~27장을 바탕으로 한 극적(劇的) 음악 '마태수난곡'은 연주 시간이 무려 3시간이 된다. 바흐는 사춘기 때 루터의 종교 개혁 사상에 깊이 빠졌다. 루터는 일찍이 "성경 말씀 말고 찬양받을 만한 것은 음악뿐"이라고 했다. 바흐는 그 뜻에 따라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지었다.
아이제나흐의 바흐하우스 앞에 있는 바흐 동상.
바흐하우스 앞에서 황인용씨(가운데)가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교회를 찾아갔을 때 '마태수난곡'은 들을 수 없었지만 예배가 끝날 무렵 오르간 연주자가 바흐의 '바빌론의 강가에서'를 들려줬다. 교회 앞에는 바흐 동상이 파이프 오르간을 등진 채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옆에선 떠돌이 악사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연주를 했다. 그 옛날 바흐도 음악으로 밥벌이를 했다. 장례식에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성가(聖歌) 합창을 해주고 돈을 받았다. 그러니 황인용씨는 "언젠가 바흐는 친구에게 '건강 바람이 불면 수입이 절반으로 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웃었다. ◇루터가 성경 번역했던 바르트부르크성
일행은 바흐의 고향인 아이제나흐로 이동해 '바흐 하우스'를 찾았다. 바흐 생가를 박물관으로 복원한 곳이다. 1659년에 만든 오르간을 비롯해 바흐 시대의 유물이 관람객을 맞았다. 바흐 하우스 2층은 전시장이자 작은 음악감상실이다. 천장에 쇠줄로 매단 둥근 캡슐형 의자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관람객이 그 속에 앉아 헤드폰을 낀 채 바흐 음악을 느긋하게 즐기게 했다.
바흐의 고향엔 루터가 한때 머물렀던 하숙집 루터 하우스가 남아있다. 집 부근엔 사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밑엔 글씨가 새겨진 돌이 박혀 있다. '내일 지구가 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리라. 마틴 루터.' 일행은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 말이라고 배웠는데 루터가 한 말이었나?"라며 놀라워했다. 루터 하우스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또 다른 학설을 들려줬다. "루터 어록인지 아닌지 확인되지 않았다. 루터의 제자가 한 말이라는 주장도 있다"며 빙긋 웃었다.
아이제나흐 주변엔 루터가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한 뒤 몸을 숨겼던 바르트부르크성이 있다. 루터는 그 성의 외딴 방에서 헬라어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때마침 구텐베르크가 내놓은 활판 인쇄술 덕분에 온 사방에 퍼져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바르트부르크성에는 루터의 낡은 책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작은 책상에서 역사의 큰 변화가 용솟음쳤다. 루터는 문자로 세상을 바꿨고, 바흐는 음표로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아이제나흐는 인구 4만여명의 작은 도시지만 루터와 바흐 두 거인(巨人)의 성지(聖地)로 각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