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등급 회사債 발행 취소하기도… 돈줄 마르나

"회사채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신규 발행은 물론이고 만기가 돌아와서 차환하려는 회사채마저 발행이 어렵다는 것입니다."(A 시중은행 여신담당자)

작년 이후 웅진·STX 사태에 이어 '동양 부실 CP(기업 어음)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 시장에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엔 신용등급 A(투자적격)인 대기업 계열사들도 회사채 발행에 앞서 수요예측을 하다가 사겠다는 곳이 없어 금리를 급히 0.05~ 0.15%포인트씩 올리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특히 24일부터 '제2의 동양 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사들이 부실한 그룹 계열사의 회사채나 CP를 함부로 팔거나 투자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금융투자업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자금 시장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투자자 보호 명분엔 공감하지만 경기 침체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의 돈줄이 더 마를 수 있기 때문이다. CP 시장도 투자자의 불안 심리 때문에 발행 만기가 최근 한 달 사이 절반 수준인 58일로 확 짧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얼어붙는 회사채 시장

최근 들어선 신용등급이 A등급인 회사채도 발행을 취소하거나 금리를 올려 발행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달부터 수요예측에서 미달한 A등급 회사채 물량이 6000억원어치가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용등급 A-인 한화갤러리아도 최근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다 수요예측이 40억원에 불과해 금리를 0.05%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KDB대우증권 남상구 연구원은 "10월에만 4조812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데, 일부 비우량등급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4일부터 금융투자업법이 시행되면서 증권사가 계열사의 투자부적격 등급 회사채·기업어음(CP)을 일반 창구에서 투자자에게 권유하거나 팔 수 없고, 또 펀드·투자일임재산·신탁재산 등 고객 재산에도 편입하지 못하게 된다. 당장 이번 규정 개정으로 계열사 채권 판매에 영향을 받을 증권사는 동양증권과 골든브릿지증권이다. 여기에 몇몇 대기업 증권사들도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한두 단계만 떨어지면 똑같은 제한 조치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불안감 탓에 CP 만기 점점 짧아져

동양 부실 CP 사태 이후에도 CP의 발행 규모는 오히려 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무더기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직후인 지난 1일부터 11일까지 7영업일간 CP 전체 발행액은 14조9000억원으로 직전 7영업일 발행액(11조5000억원)보다 29%가 늘었다. 웅진·STX 사태 등으로 회사채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기업들로서는 발행 한도가 없고, 발행 과정에 공시의무 등이 없는 CP의 유용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반영되고 있다. CP 발행의 만기가 급격히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증권 최종원 연구원은 이날 "이달 들어 발행된 CP의 만기는 평균 58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5월(당시 평균 49일) 이후 3년 만에 가장 짧아진 것이다.

통상 3개월에서 6개월 단위로 발행되는 CP의 만기가 더 짧아진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그만큼 CP를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CP 평균 만기는 지난 2월에는 234일에 달했는데 금융 당국이 5월부터 만기 1년 이상 CP에 대해 증권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하자, 기업들이 만기가 짧은 CP 발행을 늘려 CP 만기가 점차 짧아졌다. 그 결과 9월엔 평균 만기가 101일로 줄었는데, 동양 사태 여파로 10월 중 발행된 CP 만기는 그 절반 수준인 58일로 단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