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28 10:57

최근 일간지 지면 톱기사를 장식한 어느 가장의 자살은 성인이 된 자식의 경제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나온 서글픈 뉴스였다. 자신들이 진 빚을 갚기 힘들어지자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둘째 아들 부부의 뉴스도 자식들을 힘들여 키우고 노년을 맞이한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한국에서는 경제적 문제와 관련한 가족 간의 참사가 왜 이어지고 있을까? 우리가 자식을 잘못 키웠나 아니면 자식들이 모두 자기만을 아는 이기주의자 차원을 넘어선 악마로 변한 것일까?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되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베이비붐세대들이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되고 내 자식만은 이사회에서 최고로 키워보자는 의식이 부모들에 팽배해 지면서 자식들을 자기의 이상형으로 키우려는 노력이 지나쳐 나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유명 유치원을 등록하고 영어 과외를 시작하고 학교에 들어가면 방과 후 과외학원, 스포츠 과외, 피아노 등 악기 배우기, 조기유학 등등. 숨 쉴 틈도 없이 돌아가는 하루하루, 일 년 이 년의 트레이드 밀 위에서 정신없이 뛰다가 성년을 맞이하게 된다.

학벌과 스펙을 갖추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는 부모들의 성화에 자신들의 취향이나 특기를 살릴 틈도 없이 계획된 틀 안에서 일정한 모양의 소시지가 공장에서 생산되듯 성인이 되어 나온다. 그래도 이건 성공한 케이스의 얘기다.

자식들은 부모의 리모트 컨트롤대로 학교 교육, 과외 활동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보니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고 사회에 나와 무한 경쟁을 하다가 능력이 안되면 결국 자기도 모르게 캥거루족이 되고 마는 것이다.

최근에는 부모도 부모지만 조부모를 잘 두어야 편하다는 말도 보편화했다. 의사, 법조인, 시쳇말로 좋은 사위 얻었다는 것도 잠깐 박봉의 판사가 자녀 유학비를 자기 월급으로는 감당 안 되니 잘나가는 외할아버지가 1년에 억자소리 나는 돈을 대주게 된다. 자기 벌이로는 상류 생활이 안 되는 아들 며느리에게 한 달에 생활비로 몇천만 원을 대주는 통 큰 시아버지도 있다.

서양의 경우는 어떤가. 보편적으로 자녀들이 18세가 넘으면 집을 나가서 독립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대학을 가면 스튜던트 론을 얻어서 그 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꾸리고 나중에 취직해서 갚는다. 이 스튜던트 론은 이자가 없이 대출되므로 정부에서 무상으로 부모 대신 돈을 대주는 셈이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면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일은 거의 없고 정말 돈이 필요하면 부모에게 빌려 일정 기간 후 이자와 함께 갚는다. 요즘 영국도 취업난이 심해 대학 졸업 후 집으로 다시 돌아와 생활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부모 집에서 공짜로 사는 경우는 드물다. 만약 집에 그대로 살면 부모에게 방세 또는 생활비로 일정액을 매월 낸다.

우리 상식으로는 각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부모 자식 서로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독립적 생활을 한다는 면에서 서로가 편하고 자기 자신의 생활에 책임을 지게 된다. 최근 한국 분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대학 졸업해 취직한 딸로부터 그동안 키워주신데 대한 감사로 매월 일정액의 용돈을 받는다는 말에 모두 놀라는 얼굴들이었다.

또 취직해 부모님께 음식 대접하는 자식들의 밥을 안쓰러워 편안하게 먹지 못했다는 분들도 있었다. 우리 부모들 자식 사랑 누구보다 극진하다. 하지만 조금만 자식을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키운다면 자식의 성공은 물론 노년에 자신들의 생활이 더 편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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