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서울 중구 반도호텔에서 열린 노라노 패션쇼. 국내 최초의 패션쇼였다. /조선일보 DB
"영화를 보고 남자 기자들도 '울컥했다'고 하더라고요. 내 인생이 뭐 그리 감동적일까 싶으면서도 내심 행복했어요. '내가 열심히 산 게 헛된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요(웃음)."
'우리나라 패션 디자이너 1호'로 불리는 디자이너 노라노(본명 노명자·85)의 인생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31일에는 노라노의 삶을 토대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라노'가 개봉한다. 지난 5월 말 '여성영화제' 때 상영됐던 영화가 이번에 정식 개봉한다. 30일부터 12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신문박물관에서는 디자이너 노라노의 활약을 신문 자료로 되짚어 보는 전시 '노라노: 자료로 보는 노라노발(發) 기성복 패션의 역사'가 열린다. 전시는 '디자이너 노라노' '기성복의 시대 1966~1997년' '교양과 사고의 전달' '수출경제 발전과 섬유산업' 등 4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20대부터 숨 가쁘게 일하며 한국 여성복 발달을 견인해 온 노라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노라노는 국내 1호 유학파 디자이너. 노라노의 어머니는 경성방송 초대 아나운서였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그에게 양장을 입혀 키웠다. 17세 무렵 전쟁통에 결혼했지만 매서운 시집살이를 겪다 이혼당했다. 이름을 '노라'라고 고쳐 지었다.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 이름을 따왔다. 194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의상디자인을 공부했다. 1952년 서울 명동 의상실 '노라노의 집'을 열었다. 펄 시스터스·윤복희·최윤희·엄앵란의 의상이 그녀 손에서 나왔다. 1970년대엔 미국 메이시스백화점 쇼윈도에 그녀 옷이 걸렸다.
영화·전시로 새롭게 재조명되는 우리나라 패션 디자이너 1호 노라노. /이덕훈 기자
28일 본지 통화에서 노라노는 "쑥스럽고 민망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내 영화와 전시를 보고 용기를 얻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그 시절 난 힘들어서 살았어요. 어려워서 견뎠어요. 그게 내 힘이었어요. 내 옷은 그렇게 결핍과 분노로 낳은 화려한 수확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