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채권 발행엔 秋風, 채권 유통엔 狂風

소액 채권시장 대혼란의 시대다.

채권을 새로 발행하는 발행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는데, 반대로 기존 채권을 팔고 사는 한국거래소 내 유통시장은 설설 끓고 있다. 소매채권이란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투자를 돕기 위해 50억원 미만 단위로 거래되는 채권을 말한다.

발행시장이 위축된 이유는 소매채권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대부분 웅진그룹, STX그룹, 동양그룹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각 증권사의 채권 담당자가 추산하는 소매채권 개인 투자자는 약 5만~10만여명.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동양그룹 소매채권을 사들였다가 낭패를 봤다.

반면 한국거래소가 개설한 유통시장은 혹시나 하는 대박 심리 때문에 법정관리 신청 상태인 소매채권을 사들이는 개인 투자자의 투기 매수세로 활황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우량 소매채권 외면하는 개인

28일 증권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16일과 17일 개인을 대상으로 모집된 동부제철 회사채 189회는 17억원이 모집되는 데 그쳤다.

당초 이 회사채는 개인에게서만 201억원을 조달할 예정이었다. 8% 고금리를 제시한 덕에 발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자금 조달이 무난해보였다. 하지만 동양그룹 사태로 인한 개인 투자자들의 기피 현상으로 부진한 성적표를 남겼다.

만약 회사채 발행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면 개인이 보유한 소매채권 또한 일정 비율로 출자 전환(채권을 주식으로 바꿔주는 것) 절차를 밟게 된다.

전례를 보면 이 과정에서 크게는 80~90% 손실을 본다. 동부제철 소매채권 기피 현상은 이 같은 우려감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형 증권사들은 아예 비우량 등급 소매채권 매매를 중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대형 증권사는 고객이 원하더라도 고금리 투기등급 소매채권을 구해주지 않는 쪽으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한 증권사의 채권상품부 관계자는 "대부분 기관투자자는 내부 규정에 따라 A등급 이하 채권에 투자하지 않는다"면서 "이 때문에 중견그룹의 법정관리 사태가 터질 때마다 '손해는 개인이 다 짊어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증권사 입장에서는 평판이 중요하기 때문에 거래를 안 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도 위험성이 큰 소매채권은 계열사 증권사를 통해서만 판매되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내 거래는 급증…투기수요 탓

반면 유통시장은 '거래량 활황'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8월 초만 해도 1억~10억원 정도 매매되는 데 그쳤던 소매채권 거래량은 8월 중순 20억원대로 증가했고 9월 16일엔 213억원이나 거래됐다.

10월 들어선 다소 잠잠해졌지만 그럼에도 일평균 거래량은 30억원이 넘고, 100억원을 웃도는 날도 나오고 있다.

거래량 급증은 동양 사태로 회사채 가격이 급락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몰려든 개인 투자자가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런 현상은 웅진홀딩스 때 예상보다 많은 원금이 보장됐던 탓이 크다. 당초 웅진홀딩스 회사채는 원금의 20%만 회수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웅진코웨이 매각이 예상보다 원활히 진행되며 원금을 70% 보장받을 수 있었다. 동양 또한 이런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만 현재까지는 실패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동양 257회는 일시적으로 회생 기대감이 불붙으며 지난달 27일, 가격이 5070원으로 전날보다 30%나 뛰었고 거래 대금도 2억5669만원으로 227% 늘었다.

그런데 이 회사채는 현재 1589원까지 떨어졌다. 액면가가 1만원인 동양 회사채가 1589원의 가격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한 달 전 투자한 개인은 70% 손실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양 257회 외에도 동양 소매채권 9개가 장내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모두 1000원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한 증권사의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과거 부실 등급 회사채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렸던 성공 신화가 적은 것은 아니다"면서도 "채권의 원금 상환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