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보기 위해, 세상을 보기 위해 20세기 최고의 기록 <라이프>

  • 시니어조선
  • 사진 The Picture Collection Inc.

입력 : 2013.10.30 09:49

GALLERY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보도한 <라이프(Life)>는 주간 판매량이 1300만 부에 이를 만큼 대중의 절대적 사랑을 받은 잡지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우주개발의 시대, 냉전의 순간에서부터 소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라이프>는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일어난 갖가지 이야기를 담아낸 20세기 최고의 기록이다.

<라이프>의 커버를 장식한다는 것은 당시 모든 사진가들의 자부심이었다. TV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라이프>를 통해 세상을 봤고, <라이프>는 사람들의 인생을 기록했다.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유진 스미스, 더글러스 던컨 등이 활동했고, 주간 판매량이 1300만 부에 이를 만큼 대중의 절대적 사랑을 받은 잡지였다. 이들이 남긴 900만 장의 사진 중 130여 장을 <라이프> 사진전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 展에서 선보인다. 백범 김구 선생부터 마이클 잭슨, 한국전쟁에서 폴로 11호까지 세계 근현대사의 굵직한 순간을 기록한 <라이프> 사진전은 인생과 역사에 대한 멋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11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1층 전시관.


‘물레와 같이 있는 마하트마 간디’
| Margaret Bourke-White, 1946

‘물레와 같이 있는 마하트마 간디’
“실을 뽑는 것은 인도를 위한 길입니다. 아무리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라도 하루 한 시간은 가난한 이를 위해 차르카를 돌리십시오. 인도인이여, 자기 손으로 자기 옷을 만드십시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 헌신하고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갈등을 중재하려 했던 비폭력 저항운동가 마하트마 간디. 그는 물레질을 통해 독립 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다. 1946년,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사진기를 들고 간디를 만나러 갔다. 단 세 번의 촬영만 허락됐다. 플래시가 말을 듣지 않더니 다행히 마지막 세 번째 촬영에서 물레 너머 간디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김구 선생의 장례식 풍경’
|
Carl Mydans, 1949

‘김구 선생의 장례식 풍경’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가슴에 총을 맞고 서거한다. 경교장 2층 김구 선생의 집무실 창문에 난 총탄 자국과 서거 직후 경교장 앞뜰을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이 <라이프> 1949년 7월호에 ‘혼란 속의 한국, 호랑이를 잃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2층에서 1층으로 빈소가 옮겨지고, 장례가 치러지는 열흘 동안 조문객을 받았다. 서거 당일 경교장으로 몰려든 국민의 애도 물결이 그날의 참담한 분위기를 말해준다. 김구 선생의 장례는 10일장으로 치러졌는데, 문상 행렬이 경교장 1층 동쪽 방에 마련된 빈소에서부터 서대문 사거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해병의 키스’
| Alfred Eisenstaedt, 1945

‘해병의 키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기념일,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종전의 기쁨으로 흥분해 있었다. 그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한 해병이 사람들을 붙잡고 키스를 퍼부었다. 어린 소녀든, 늙은 부인이든, 뚱뚱하든, 날씬하든 마냥 나누고 싶은 기쁨의 키스였다. 검은 옷의 해병이 순백의 간호사를 격렬히 낚아챈 순간, 사진가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는 셔터를 눌렀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단 네 컷 중 한 컷인 이 사진은 여느 연인들 못지않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다. 사진 속 주인공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낙원으로 가는 길’ | W. Eugene Smith, 1953

‘낙원으로 가는 길’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당한 큰 부상으로 생사의 기로에 있던 사진가 유진 스미스가 자신의 아이들을 찍은 사진으로, 어두웠던 20세기의 희망을 상징하는 명작으로 꼽힌다. 특히 이 사진은 전쟁의 상처를 이겨내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주제로 1955년에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기획한 ‘인간가족전’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으로, 1957년 4월 경복궁 미술관에서도 순회 전시했다.


‘윈스턴 처칠’ | Alfred Eisenstaedt, 1951

‘윈스턴 처칠’
“품행이 나쁜 믿을 수 없는 학생으로 의욕과 야심이 없고 자주 다투며, 상습적으로 지각하고 물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야무지지 못하다. 잘한 것이라고는 역사와 영어밖에 없었다.” 윈스턴 처칠의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겨진 내용이다. 낙제생 처칠은 삼수 끝에 사관학교에 입학, 남아프리카 전쟁 포로에서 탈출해 전쟁영웅이 되었고 이후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희망을 잃은 영국민과 세계를 향해 신념을 담은 연설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문의 02-747-7790


RESOURCE (주)유니크피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