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찹쌀떡 거리에서 試驗神을 만나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전국 기도처에는 막바지 입시기도가 한창이다. 더불어 수험생 주변의 지인들도 한두 번쯤 찹쌀떡 가게로 발걸음을 향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이 무렵에 참배한다면 참으로 어울리는 성지가 있다. 늘 벼르기만 하다가 지난 9월 하순 비로소 기회가 닿았다. 일본 전역에서 연간 700만명이 다녀간다는 '학문의 신'을 모셔놓은 신전을 순례한 것이다. 스승의 칠순 나들이에 책을 좋아하는 제자 10여명이 함께 나들이를 했다. 목적지도 좋았고 길벗은 더 좋았다. 본당 뒤편에는 닳아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붓들의 무덤인 '필총(筆塚)'도 보인다. 글을 숭상하는 공간임을 말없이 대변한다.

그런데 중생이란 어차피 자기 위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학문의 신에 대한 추앙도 추앙이지만 그보다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더 우선이다. 학신(學神)은 세월이 흐르면서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험기도 전문 신'으로 둔갑해 있었다. 하긴 대중이 원한다면 설사 내키지 않더라도 마다할 일은 아니다. 학신이면 어떻고 시험신(試驗神)이면 어떠랴. 알고 보면 그게 그것이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다 보면 또 다른 자기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다음에 또다시 문제 해결을 위해 학신을 찾을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이든 순서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면 변신을 굳이 탓할 일도 아니다. 설사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들 어찌 수많은 사람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할 수 있으랴. 아무리 간 큰 신이라고 할지라도 혼자 고상한 체하다가 외톨이가 되느니 차라리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더불어 사는 편이 여러모로 낫지 않을까 하는 무엄한(?) 상상까지 해본다.

가을로 접어드는 규슈(九州) 덴만구(天滿宮) 신사(神社)는 관광객과 시험기도 인파로 넘쳐났다. 하긴 시험이 어찌 대학입시뿐이겠는가? 작게는 운전면허 시험부터 크게는 고시까지 참으로 많기도 하다. 또 직업군이 다양해지면서 시험 종류도 그만큼 늘어났다. 알고 보면 사는 것 자체가 시험의 연속이다. 단계단계마다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것이 세상살이다. 사바세계의 사정이 이러하니 시험신 역시 일년 내내 이만큼의 기도객을 매일같이 맞아들여야 하는, 이것이 신의 현실이기도 했다.

야외에 설치된 긴 탁자 양쪽에는 귀밑에 솜털이 뽀송뽀송한 소년과 소녀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소원지에 뭔가를 또박또박 열심히 적고 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대견해 보인다. 저 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했던 시절, 시험을 앞둘 무렵이면 늘 아랫배가 살살 아프고 심할 때는 설사까지 했다. 그럼에도 저들처럼 기도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실력보다 제대로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던 기억만 새록새록 일어난다.

역에서 신사 정문까지 진입로 양편에는 저마다 솜씨를 자랑하는 찹쌀떡 가게가 즐비하다. 그뿐만 아니라 경내의 식당 안내판에도 찹쌀떡 메뉴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수험생에게 찹쌀떡을 주는 세시풍속의 근원을 만난 셈이다. 뿌리를 찾아냈다는 사실은 언제나 경이로움을 준다. 이제 더 이상 시험에 응할 일이 없는 위치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혹여 '시험에 들까 봐' 찹쌀떡 가게에 들렀다. 이튿날까지 약간 딱딱해진 것도 맛있게 씹으면서 일정대로 따라다녔다. 1200년의 역사를 지닌 떡은 그 자체로 이미 음복(飮福)의 영험을 지닌 까닭이다.

찹쌀떡은 유배당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845~903)를 학문의 신으로 승진시킨 일등공신이다. 귀양지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인근의 작은 절에 머물고 있는 나이 많은 비구니 스님이 가끔 갖다주는 찹쌀떡을 얻어먹는 일이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화병으로 2년 만에 죽었을 때 영구 위에 이것을 얹어줄 정도였다. 그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사당에도 늘 찹쌀떡 공양물은 빠지지 않았다. 정치적 분노로 인하여 일그러졌던 그를 차츰차츰 본래의 단엄한 학자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치유해 준 소울푸드였다. 이런 공로로 인하여 천년 동안 신성하면서도 또 사랑받는 먹을거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주변의 일천 가게를 일천년 동안 먹여 살리는 지역사회의 효자 상품이 된 것이다.

하긴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는 귀양객에게 무슨 말인들 제대로 귀에 들어오겠는가? 백 마디 거룩하신 말씀보다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낸 찹쌀떡 한 점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운문(雲門·864~949) 선사에게 "어떤 것이 성인마저 뛰어넘을 수 있는 말씀인가?"를 물었을 때 "찹쌀떡(원문은 호떡)!"이라고 대답한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