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북앤수다] 10년만에 돌아왔다, 충동의 사나이

작가 백민석(42)이 절필과 잠적 10년 만에 돌아왔다. 11월에 나오는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의 단편 '혀끝의 남자', 그리고 같은 시점에 출간될 동명(同名)의 소설집을 들고서다.

문단은 '마침내'라는 부사로 반갑게 받아들이겠지만, 강산도 변할 시간이 흐른 2013년 대중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백 누구?' 이렇게 소개해보자.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젊은 평론가 중 한 명인 신형철(37)은 '레전드(전설)'와 '경이'라는 표현을 썼고, 신인 소설가 한은형(33)은 '뉴웨이브'라고 했다. 90년대 고등학생이었던 자신에게는 장정일 정영문 배수아와 함께 떠오르는 아련한 이름이라는 것. 엄정한 비평적 용어라기보다 문학적 애정과 향수 쪽이겠지만, 백민석이 당시 감성 예민한 젊은 후배들에게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사소한 사례다. 엽기와 그로테스크의 창시자. 파괴적 감수성과 문체로 90년대 문학의 향방을 인도했던 신세대 문학의 기수. 1995년 '내가 사랑한 캔디'로 등단한 이래 8년 동안 8권의 소설집과 장편을 펴낸 직업적 성실함.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공식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2003년 말 그대로 증발했었다.

―우선 절필과 복귀의 변(辨)부터.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충동적이었다. 우울했고, 글을 쓰면 더 우울해졌다. 태안 바닷가에서 한동안 혼자 있었고, 이후에는 글이나 책과 상관없는 회사에서 일했다. 노력한 만큼 가져가는 직업이었다. 만족했다. 작가를 그만두니 건강이 좋아지더라(웃음)."

―'충동'은 너무 무책임한 변명 아닌가.

"미셸 푸코의 '비정상인들'에 이런 내용이 있다. 18세기, 어떤 여자가 살인을 저지른다. 그런데 아무리 조사해도 이유가 없었다. 18세기는 이성과 계몽의 시대 아닌가. 뭐든지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은 시대다. 당시 처음으로 생각해낸 개념이 '충동'이다. 세상에는 이성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무의식의 영역. 이번에 그 영역을 복귀의 변이자 소설로 썼다."

전성기의 (권투 선수) 타이슨을 연상시켰던 10년 전과 달리, 그는 차분했다. '무의식'이라는 방패를 든 40대의 백민석 뒤로, 예전의 글과 기억들이 두서없이 되살아났다. 중학생 때부터 자신과 할머니가 쓸 돈을 벌어야 했던 소년.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무허가 판자촌에서 아픈 할머니를 책임지며 살았다. 새벽에는 신문을 돌렸고, 밤에는 생맥주 잔을 날랐다. 그의 장편 '불쌍한 꼬마 한스'에는 "이젠, 병원 중환자실 영안실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정겨워진다"는 구절이 있다. 60대 이상은 그 정도 가난이 가난이냐고 하겠지만, 백민석의 가난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가난이 아니었다.

그는 '핵 주먹'의 작가이기도 했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대부분 문학 계간지가 평론을 실었지만, 8권을 쓰는 동안 단 하나의 문학상도 받은 적이 없다. 술자리에서 종종 그의 분노와 우울이 폭발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상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예술가도 사람.

―한국 문단이 당신에게 너무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그러기에는 나에 대한 평론이 많이 나왔다. 축복받은 작가다. 물론 책은 별로 안 팔렸고, 상을 받은 적도 없다. 하지만 그 정도 기분 나쁜 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왜 상을 안 줬을까.

"(묻자마자) 니체 전집을 다 읽었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욕지거리를 한다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내가 글을 못써서 그렇겠지.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 못 받는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지역적 정치적 편향 운운하는데, 나는 글을 못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 못 받은 것도, 한국이 노벨상 못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웃음)."

10년 만의 귀환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그가 무슨 글을 가지고 돌아왔느냐일 것이다. 예전의 그는 대중문화를 일용할 양식처럼 먹고 자란 첫 세대의 엽기적 전범(典範)이었다. 하지만 '혀끝의 남자'는, 뭐랄까, 파란만장한 청년 시절을 마감한 탕아의 성숙한 고백성사 같은 느낌이 있다. 신과 인간의 이야기. 하지만 전지전능한 신과 무력한 인간에 대한 구원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가짜 신과, 만들어진 가짜 신이 구원하는 인간이다.

―청춘을 마감한 지금, 당신의 문학은 독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내 소설의 등장인물은 항상 나와 동갑이었다. 나는 내 소설과 함께 늙어간다. 80년대의 소설이 이성을 만족시켜야 했다면, 지금의 소설은 독자의 무의식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이성을 만족시키는 건 실용서다. 소설가가 실용서를 쓸 이유는 없지 않나. '혀끝의 남자'는 왜 사람들이 계속 신을 만드는가, 그리고 왜 자기가 만든 신에게 의지하고, 그 신 때문에 죽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안지는.

"어제 누군가 신을 죽였다면, 오늘은 누군가 새 신을 만들 것이다. 인간은 엉터리 같은 존재. 신은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그 엉터리 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신이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문학이 있고, 독자의 무의식에 화인(火印)을 찍는 문학이 있다. '혀끝의 남자'는 후자다. 즐거움이 아니라 쓰라린 각성의 하드코어. 백민석의 주인공은 머리에 불을 붙이고 혀끝을 걷는 남자를 본다. 불의 뿌리가 이마까지 적시는데도, 남자는 고요 속을 걷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났을 때, 작가는 반팔 셔츠 차림이었다. 열이 많아서라고 했다. 서울의 가을이 최저온도를 기록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