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현장] 봉이 김선달이 깜짝… 뉴욕 하늘 한평 얼만지 아십니까

"하늘을 사고판다고 하면 아직까지는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아요."

미국 뉴욕 맨해튼의 부동산 개발 업체 알케미의 케네스 혼 대표는 "공중권(air rights) 거래가 아직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공중권이란 땅이나 건물 위의 하늘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로, 뉴욕시에선 1961년부터 거래가 합법화됐다. 고층 건물을 올려 조망권을 확보하려는 부동산 개발 업자들이 주변 저층 건물이 활용하지 않는 유휴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 비율)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공중권 거래가 진행된다. 예컨대 어떤 블록에 10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용적률 제한이 돼 있을 경우, 3층짜리 건물을 소유한 건물주는 7층을 더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 블록에 20층짜리 건물을 짓고 싶다면 주변 저층 건물의 남은 용적률을 사들이면 되는 것이다. 알케미가 개발한 맨해튼 이스트 77가의 18층짜리 아이시스 아파트는 옆 건물 두 곳의 공중권을 매입했다. 이 때문에 이 아파트는 6층부터 옆 건물 위로 불쑥 튀어나온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건축물 보존하면서 고층 개발, 윈-윈

아직 재산으로서 공중권 개념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로선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뉴욕이나 LA 등 미국 대도시에선 공중권 거래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맨해튼 도심 한복판에 말뚝처럼 솟아 있는 메트라이프 빌딩이 대표적이다. 이 건물은 뉴욕의 명물인 그랜드센트럴 역사 옆에 서 있다. 웅장한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외관을 수놓은 그랜드센트럴 역사는 1913년 완공된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비행기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기차 여행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철거 위기에 몰렸다. 부동산 개발 업자들은 낡은 역사를 허물고 이곳에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그랜드센트럴 역의 역사적 가치를 내세운 철거 반대론에 직면했다. 결국 양측의 의견을 절충해 그랜드센트럴 역사를 보존하되 쓰지 않는 하늘의 개발권을 사들여 지은 건물이 1963년 완공된 메트라이프 빌딩이다.

맨해튼 53번가와 렉싱턴 애비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시티그룹 본사 건물인 시티콥센터도 지난 1977년 공중권을 활용해 지었다. 시티그룹은 이곳에 59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 했지만, 부지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유대교 회당이 이전을 거부하면서 문제가 됐다. 하지만 시티그룹은 공중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 회당을 매입하지 않고도 279m의 고층 건물을 짓는 데 성공했다. 대신 건물 주변의 회당이 훼손되지 않도록 시티그룹은 이 건물의 12층까지 큰 기둥 4개를 세워 비워 놓았다. 4개 기둥 사이의 아래쪽 공간은 시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새로운 부동산 수익원으로 주목

맨해튼처럼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건물을 지을 빈 공간은 없는 대도시에서 공중권 거래는 새로운 부동산 수익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근 건물의 공중권을 사들이면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쟁자들이 주변에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원천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맨해튼에선 공중권을 사들여 초고층 건물을 올리는 공사 현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파크 애비뉴 432번지의 옛 드레이크 호텔 부지에는 맨해튼에서 주거용 건물로는 가장 높은 95층짜리 럭셔리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이곳 건물주는 지난 2006년 4억1830만달러에 부지와 공중권을 매입했다.

센트럴파크 인근 57가에는 90층짜리 원57이란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원57 개발 업체인 익스텔의 게리 버넷 대표는 이곳과 가까운 센트럴파크 조망권을 얻기 위해 주변의 공중권을 사들이는 데 15년간을 공들였다. 결국 옆 건물 두 곳에 9000만달러씩 지불하고 공중권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맨해튼에서 공중권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가격도 급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중권 거래 전문 업체인 시티센터의 로버스 샤피로 대표는 "작년 하반기에만 공중권을 총 11건 거래했다"면서 "조망권이 좋은 고층 아파트나 오피스 빌딩은 더 높은 가격에 팔리기 때문에 개발 업체로서도 충분히 수익성이 있다"고 말했다. 알렉시코그룹이 뉴욕법과대학에 1억5000만달러를 주고 공중권을 사들여 레오나르드가에 짓고 있는 57층짜리 럭셔리 아파트는 저층 가격이 300만달러 정도지만, 고층 가격은 3500만달러를 호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공중권 가격은 20년 전 평방피트당 45달러에서 지금은 450달러가 돼 10배로 뛰었다. ㎡당으로 환산하면 4500달러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건물 위 빈 하늘이 '보이지 않는(invisible) 땅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부동산 개발 업자들에겐 공중권이 새로운 금광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공중권(air rights)

땅이나 건물 위의 하늘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 미국 뉴욕시에선 블록별로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 비율)을 제한하고 있는데 주변 저층 건물이 활용하지 않은 유휴 용적률을 사들이면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예컨대 10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블록에서 5층짜리 건물은 나머지 5층에 대한 공중권을 팔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