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金利 역대최저(年 2%대)… 적격대출(장기·고정금리형 주택 대출) 10분의 1로 급감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시중은행에서 판매한 주택 담보대출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던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적격대출' 판매액이 폭삭 주저앉았다.

적격대출은 공기업인 주택금융공사가 정해주는 대출 만기 기준에 맞춰 각 은행이 설계해 판매하는 장기·고정 금리형 주택 담보대출 상품이다.

지난해 3월 출시된 적격대출 판매액은 같은 해 8월 2조1283억원어치가 팔려나갔고, 11월에는 2조3159억원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올해 들어 판매액은 점점 감소하기 시작하더니 7월 416억원, 8월에는 241억원으로 격감했다. 가장 많이 팔린 달(2012년 11월)에 비해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사상 최저 시장 금리 탓에 적격대출 급감

적격대출 판매액이 급감한 가장 큰 이유는 '금리'다. 지난해 9월 A은행에서 주택 담보대출을 받을 때 변동 금리로 받으면 최저 금리가 연 3.95%였고, 10년 만기 적격대출 금리는 연 4.15%였다. 적격대출 금리가 0.2%포인트 높지만, 은행의 최저 금리를 적용받는 대출자는 소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격대출은 변동 금리 대출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적격대출은 일단 금리가 정해지면 대출 기간(10~30년)에는 금리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금리 인상에 대한 위험 부담도 적었다. 적격대출의 이런 이점 때문에 대다수 주택 대출자는 변동 금리 대신 적격대출을 선택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시장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10월 기준으로 만기 10년 적격대출 금리는 4.16~ 4.97%인 데 비해 은행의 변동 금리 대출 금리는 평균 3.8~3.9% 수준이다. 여기에 대출받은 은행에 급여 이체를 하고, 신용카드를 만들고, 인터넷 뱅킹 등을 신청할 경우 고신용자라면 3%대 중반에도 변동 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적격대출과 변동 금리 대출 간 금리 차가 크게 벌어진 것은 경기 침체 여파로 시장 금리는 계속 떨어진 데 비해, 적격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국고채 금리는 거꾸로 올랐기 때문이다. 국고채 금리를 끌어올린 요인은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이다. 양적 완화가 축소되면 외국인 채권 투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국고채 투매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면서 국고채 금리(5년 만기)는 지난 1월 2.98%에서 9월 말에는 3.05%로 올라갔다(국고채 가격은 하락).

◇변동 금리 대출, 금리 상승 땐 소비자가 모두 부담져야

전문가들은 대출자들이 변동 금리 대출 상품에 몰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변동 금리 대출은 지금 같은 초저금리 상황에선 유리하지만, 향후 금리 변동 위험은 고스란히 대출자 몫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5년 전인 2008년엔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시장 금리가 급등하는 바람에 변동 금리 주택 대출자들은 연 8~9%대 이자를 물어야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시장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이고, 내년 이후엔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변수가 있어 시장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제시하며 대출 상품 선택을 신중히 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실제로 동양그룹 사태 등의 여파로 국내 자금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지난 9월 은행의 가중평균 예금 금리가 9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향후 시장 금리의 '상승 반전'을 촉발할 수 있는 복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은행들은 적격대출보다는 변동 금리 대출을 판매하는 데 더 적극적이다. 적격대출은 은행이 판매만 대행하는 구조여서 수수료만 챙길 수 있는 반면 변동 금리 상품은 은행 자체 상품이어서 지속적으로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적격대출

9억원 이하 주택을 담보로 최고 5억원까지 고정금리, 원리금 균등 분할 상환, 만기 10~30년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주택금융공사가 요구하는 규격대로 은행들이 상품 구조를 짠다는 의미에서 '적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