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무너진 뒤… 오히려 핀란드 창업열기 뜨거워

핀란드 수도 헬싱키 서쪽 위성도시 에스포에 위치한 알토대학 캠퍼스.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약 1000㎡ 규모의 단층 건물 입구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스타트업(start-up) 사우나.' 4년 전 핀란드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알토대 학생들이 만든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창업의 열정으로 땀을 흠뻑 빼자는 의미에서 '사우나'란 이름을 붙였다.

내부로 들어서자, 한 현직 기업인이 '소비자의 감성'을 주제로 30여명의 예비 창업자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곳에선 매일 창업을 주제로 한 2시간짜리 강의나 토론이 열린다. 예비 창업자 타투씨는 "현직 기업인의 설명을 듣다 보면 창업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사우나는 정부와 알토대로부터 매년 100만유로(약 14억6000만원)의 예산을 받아 운영된다. 매년 봄·여름·가을 3차례에 걸쳐 8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전 세계 누구나 참가를 신청할 수 있지만 매회 10개팀 정도만 선정된다.

참가자들은 아이디어 평가부터 사업성 분석에 이르기까지 창업에 대한 집중 멘토링을 받는다. 현직 기업인들이 무료로 멘토를 맡는다.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먹는 것과 자는 것은 모두 공짜다. 결혼식 같은 이벤트 장소를 검색해주는 검색엔진을 개발 중인 요아나씨는 "A부터 Z까지 다 지원받아 하루 24시간 창업 아이템에 열정을 불태운다"고 말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캠퍼스 내 '디자인팩토리'는 이들이 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어 준다. 페테로 타비오 디자인 감독은 "스티커 인쇄기부터 금형기, 전기용품 생산장비 등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건 즉석에서 다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디자인팩토리는 1년에 한 번씩 외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시제품 박람회도 열어 창업팀과 연결해준다.

이렇게 스타트업 사우나를 거쳐 창업한 기업은 지난 4년간 90여곳. 멘토링을 받은 팀 100%가 창업에 성공했다. 2010년 창업한 오벨린(Ovelin)은 자체 개발한 오디오 신호체계를 바탕으로 기타 연주를 배우는 러닝게임을 개발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140만달러의 투자도 받았다. 파워키스(Powerkiss)도 스타트업 사우나가 배출한 대표 기업이다. '키스'라고 부르는 링을 휴대폰에 끼우고 '하트'라는 장치에 갖다 대면 충전이 되는 무선충전기를 제조한다. 구글과 AT&T, LG전자 등이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스타트업 사우나를 운영하는 알토 ES의 엘라나 우델라 대표는 "지난해엔 전 세계에서 무려 500여개 팀이 스타트업 사우나 참가를 신청했다"며 "아이러니하게도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의 창업 붐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들도 창업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노키아. 한때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에 휴대폰 사업 부문을 넘겼다.

노키아는 2009년 이후 해고된 1만7000여명의 직원을 방치하지 않았다. 창업을 희망하는 직원들에게 2만5000유로의 창업 지원금을 주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4000여개의 특허기술도 무료로 공개했다. 이 특허 중에는 위치기반서비스, 환경에너지 솔루션, 모바일 보안 등 창업에 도움이 될 아이템이 대거 포함돼 있다.

노키아의 지원으로 탄생한 대표 기업이 욜라(JOLLA)다. 노키아 해고자들이 만든 스마트폰 업체로 제2의 노키아 신화를 꿈꾸고 있다. 이들의 창업을 도왔던 탐페레시의 페트리 뉴캐넨 경제개발국장은 "2010년 이후 탐페레에서 만들어진 스타트업 기업만 100여개에 달한다"면서 "대부분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강소(强小)기업"이라고 말했다.

'핀란드의 삼성전자'로 꼽히던 노키아가 망한 뒤 위기에 빠졌던 핀란드 경제는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창업 열풍. 2007년 30만8000개이던 핀란드 전체 기업 수는 2011년에 32만2000여개로 1만4000개나 늘었다. 박기임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삼성전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우리 경제도 삼성 쇼크를 겪을 수 있다"면서 "핀란드 같은 창업 생태계 조성을 통해 스타트업 기업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창조경제, 글로벌 현장을 가다' 1편은 오늘 오후 7시 40분 TV조선(CH 19)에서 방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