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모면한 기업들… 株價는 하락

퇴출 위기로부터 구사일생한 기업들이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들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포함됐다가 상장폐지되지 않고 주식시장에 살아남은 기업들의 주가가 대부분 하락 중이다.

이는 4년 전 제도가 처음 시행됐을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009년 부실기업의 상장폐지 여부를 곧바로 결정하지 않고, 기업의 재무내용과 경영현황 등을 통해 상장 적격성을 평가하겠다며 실질심사 제도를 처음 시행했다.

실질심사 대상에 포함됐다 하더라도 이를 진행하는 기업심사위원회가 해당 업체를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상장폐지를 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데, 지난해까지는 이 경우 해당 업체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급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완전히 사정이 바뀌었다.

◇부활해도 속절없이 하락

2009년 상장폐지 실질심사가 시작된 이후 실질심사 대상에 포함된 기업은 총 229곳이다. 그중 상장폐지된 곳은 82곳.

올해는 총 26곳이 기업심사위원회에 회부됐으며, 이 중 유에이블·엔터기술·현대피앤씨·예당컴퍼니 등 네 곳이 상장폐지됐다.

한데 올해는 상장을 유지한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7월, 15거래일 만에 주권매매를 재개한 쓰리원은 첫날 9%가량 떨어지더니 두 달간 44.7% 내렸다.

키스톤글로벌은 지난 6월 13일 거래를 재개한 첫날, 곧바로 하한가를 기록했고 두 달 만에 41.8% 하락했다. 셀루메드도 거래정지 전 5000원대이던 주가가 3000원대로 하락했고, 가장 최근인 지난 16일 거래를 재개한 피에스엠씨는 이후 10거래일 중 8일 동안 주가가 내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업심사위원회가 상장폐지 대상이 아니라고 밝히면 거래 첫날 상한가는 물론이고, 한동안은 주가가 올랐었다. 아티스는 지난해 5월 거래가 재개된 첫날 상한가를 기록하더니 한 달 만에 24% 넘게 상승했다.

지난해 4월 30일 거래를 재개한 에어파크는 거래 첫날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두 달여 만에 10% 넘게 올랐고, 쌍용양회공업은 지난해 5월 30일 거래를 시작한 이후, 4000원대 초반이던 주가가 5000원 후반까지 올랐다. 2011년 5월 거래를 재개했던 신풍제약도 3000원대이던 주가가 두 달여 만에 5000원대로 뛰었다.

실질심사에는 지난 2009년 60곳이 대상 기업으로 포함된 것을 비롯, 매년 50여 업체가 기업심사위원회의 판결을 받아왔다.

◇횡령·배임에 등 돌린 투자자

'구사일생 기업'의 주가가 올 들어 하락하는 것은 특히 올 들어 횡령이나 배임 같은 재발이 우려되는 사유로 실질심사 대상에 포함되는 기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상장폐지 실질심사 제도 시행 이후 지난해까지 횡령·배임 혐의로 실질심사를 받은 기업은 전체 실질심사 대상 기업 중 20% 남짓이었지만, 올해는 대상 기업 26곳 중 셀루메드, 케이피엠테크, 삼환기업 등 54%에 해당하는 14곳이 횡령 배임 혐의로 심사 대상에 올랐다.

지난해 심사 사유 중 회계처리위반(15건)과 횡령·배임(16건)의 차이는 한 건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자구이행 5건, 주된 영업정지 3건, 회계처리 위반 2건 등 다른 이유가 대폭 줄었다.

한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은 횡령과 배임 등은 언제나 재발할 수 있다고 생각해, 상폐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받았다 해도 조사가 제대로 됐는지 의심하게 된다"며 "실제 회사가 제출하는 서류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심사를 시행하는 구조도 투자자 입장에선 미덥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