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그날 北核 위성사진 못 찍은 것은… 흐린 날엔 地上 못 보는 광학렌즈 때문"

눈으로 안 보이지만, 하늘 위로 약 3750개의 인공위성이 돌고 있다. 초속 약 7.6 ㎞다. 지구 한 바퀴 도는 데 95분이 채 안 걸린다. 그 궤도에서 약 50만여 개의 '우주 쓰레기'들도 함께 돌고 있다.

교통 혼잡으로 서로 충돌이 없을까. 국내에서만 200만 관객이 본 '그래비티(Gravity·중력)'는 이를 소재로 삼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영화의 상상력을 뺀 실제 상황을 알기 위해 최준민(55) 박사와 만났다. 그는 '아리랑위성'과 '천리안위성'개발에 참여했고, 현재 항공우주연구원 위성개발총괄사업단장이다.

―'그래비티'는 러시아가 미사일로 자국의 첩보위성을 파괴하면서 생긴 파편들이 미국 우주선을 덮치는 상황을 전제했다. 지구궤도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나?

"실제 그런 사고들이 여러 번 있었다."

―여러 번?

"1991년 임무가 종료된 러시아 위성의 파편이 다른 러시아 위성과 충돌한 적 있다. 또 프랑스 로켓의 잔해물이 위성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번 영화와 유사하게, 2009년에는 임무를 다한 러시아 군사위성이 미국 상업위성 '이리듐'을 강타했다. 이때 발생한 파편들을 피하기 위해 '국제우주정거장'을 1㎞ 높은 곳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국제우주정거장'이라면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을 상상하면 되나?

"지구궤도 위에서 우주인들이 생활하면서 관측과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축구장만 한 우주선 기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16개 국가가 참여했다. 러시아 우주선인 '소유즈'가 우주인들을 국제우주정거장까지 실어나른다."

―우주정거장에는 사람들이 머물 수도 있다는 건가?

"2000년 11월부터 상주해왔다."

―상주해왔다는 것은 지금도 있다는 뜻인데.

"보통 6명이 상주하고 4~6개월쯤 머문다. 왕복우주선 '소유즈'의 탑승 인원이 3명이어서 3명씩 교대한다. 지구 대기권 바깥에서 생활하는 거의 유일한 인류라고 할 수도 있다."

―이들은 우주 파편의 충돌로부터 안전한가?

"2009년과 2011년에는 우주 파편의 충돌 위협으로 우주정거장의 상주 인원들이 대피하거나 귀환 로켓에 탑승한 적이 있었다. 특히 2011년에는 우주 파편이 우주정거장에서 불과 250m 떨어져 날아가기도 했다."

―그런 파편을 피하기 위해 우주정거장은 스스로 이동도 하는가?

"1998년 이후 충돌 등의 이유로 우주정거장은 15차례나 궤도를 바꿨다. 각국에서 쏘아 올린 인공위성도 충돌이 예측되면 당연히 궤도 수정에 들어간다."

―우리나라 위성도 충돌 문제로 궤도 수정을 한 적이 있었나?

"2011년 러시아 위성이 '천리안 위성' 쪽으로 접근해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충돌 확률을 계산해본 뒤 궤도 수정은 하지 않았다."

―충돌 확률이 10만분의 1쯤 되면 궤도 수정을 할지 검토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사실이다. 잦은 궤도 조정은 위성의 수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주 파편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이들은 지구 주위의 저궤도(고도 약 2000㎞ 이하)에 약 80%가 몰려 있다. 초속 7.5㎞로 궤도를 따라 총알같이 날아다닌다. 지구 한 바퀴 도는 데 95분, 하루에 지구 둘레를 16바퀴쯤 돈다고 보면 된다."

―숫자는 얼마나 되나?

"미국 국방부 소속 '우주감시네트워크'는 저궤도의 경우 지름 5㎝ 이상, 정지궤도의 경우 약 1m 정도 이상 크기의 파편을 추적하고 있다. 추적 대상만 2만 1000개쯤 된다. 이들 중 1만5000개의 운행 궤도는 공개돼 있다."

―그 정도 크기의 파편에 맞았을 때의 충격은?

"초속 10㎞의 속도를 가진 1㎝ 크기의 알루미늄 파편의 충격량은 시속 50㎞로 달리는 1.5t 트럭의 충격량과 같다. 파편과 인공위성의 속도는 비슷하다. 서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끼리 충돌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크기의 파편에도 위성은 산산조각이 난다. 1983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궤도 비행 중 페인트 티끌에 맞아 유리창이 움푹 팰 정도의 손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우주 파편들이 인공위성을 파괴하고, 이때 생겨난 파편들이 또 다른 위성을 덮치는 연쇄 작용을 낳아 지구궤도에 인공위성을 띄울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케슬러 증후군'이다. 현실에서 정말 그렇게 될까?

"1978년 미국우주항공국의 케슬러 박사가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그렇게 나왔다. 2007년 중국이 폐기된 자국의 기상위성을 미사일로 요격했다. 당시 지름 10㎝ 이상의 우주 파편이 4000개가량 발생했다. 이런 우주 파편들이 다른 위성을 덮치고, 그 위성에서 또 파편이 발생하게 되는 식이다. 기하급수적으로 파편들이 늘어나 지구궤도를 덮을 수 있다."

―당시 중국의 행위는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는데.

"그렇다. 하지만 임무 종료가 된 위성이 지구에 곧바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 미국도 2008년 고장 난 첩보위성에 미사일을 발사해 파괴한 적이 있었다."

―인공위성의 수명은?

"저궤도에 위치한 위성은 3~5년, 정지궤도 위성의 경우는 10~15년이다. 위성이 지구 둘레를 도는 것은 중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저궤도의 경우 중력이 강해 원심력을 얻으려면 속도가 빨라야 한다. 이 때문에 저궤도 위성의 수명이 짧다."

―수명이 다하면?

"저궤도 위성은 임무 종료 후에도 수십년간 떠 있다가 차츰 고도가 떨어져 대기권으로 추락한다. 그 과정에서 마찰열로 소멸된다. 정지궤도 위성은 적도 바로 위 3만6000㎞에 떠 있다. 지구 자전 속도와 같아 항상 우리 머리 위에 있다. 그 정지궤도의 자리는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임무가 종료되면 내부 추력기를 가동해 위성을 궤도 바깥으로 밀어낸다. 이렇게 밀려난 정지궤도 위성은 수백년 동안 떠다니게 된다."

―수명이 다한 위성도 우주 쓰레기가 되는가?

"그렇다. 이 때문에 유엔에서는 수명이 다해가는 위성의 경우 추력기를 사용해 고도를 600㎞ 이내로 낮추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럴 경우 위성이 25년 안에 대기권으로 떨어지면서 불타서 소멸된다."

―스위스 우주센터는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위성을 2017년 쏘아올리겠다고 했는데.

"수명 다한 위성들이 쓰레기로 떠다니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이다. 두 개의 위성을 쏘아 올려 하나는 '쓰레기 위성'으로 가정한다. 다른 하나의 위성이 쓰레기 위성을 포획해 대기권에 재진입하면서 소멸하는 기술을 시험하는 것이다."

―지구 궤도에 떠 있는 위성 숫자는?

"현재 떠 있는 위성은 3750개쯤이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위성은 1100개쯤이다. 나머지는 우주 쓰레기가 된 셈이다."

―북한이 작년 말 자체 로켓으로 발사한 '광명성 3호'위성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북한에서는 '지구관측 위성'이라고 발표했다. 궤도에는 진입한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 작동이 되는지는 확인이 안 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북한이 성공했으면 위성에서 보내온 전송 사진을 자랑했을 것이다. 그냥 우주 쓰레기처럼 떠다니고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위성은?

"지금까지 모두 15개가 올라갔다. 이 중 5개(아리랑 2·3·5호, 나로호위성, 천리안위성)가 작동 중이다."

국내 첫 위성은 1992년 8월 11일 발사된 '우리별 1호(과학위성)'다. 작년에 발사된 '나로호'도 과학위성이다. 이달 안에 '과학기술위성 3호'가 발사될 예정이다.

'아리랑위성'은 지상 관측 등을 행하는 다목적 실용위성이다. 현재까지 4개가 발사됐다. 정지궤도 위성인 '천리안 위성'은 기상과 통신 목적으로 주로 사용된다. '무궁화위성'은 방송통신용이다.

―이 중 성능이 가장 좋은 위성은?

"아리랑 3호의 경우 해상도(解像度)가 가장 높다. 지구 궤도에서 지상을 찍으면 0.7×0.7m 크기가 하나의 점으로 나타난다."

―군사 첩보 위성은 없나?

"군사 목적만으로 띄운 위성은 아직 없다. 그러나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위성'에 북한 지역을 찍으라는 임무를 부여하면 찍을 수 있다."

―그런 위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올 초 북한의 핵실험 위성사진을 못 찍어 국회의 질타를 받은 걸로 기억난다.

"우리 항공우주연구원은 늘 두들겨 맞는다. 당시 핵 실험장 사진 촬영을 시도했지만 해당 지역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다.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카메라를 잘못 조종해 엉뚱한 걸 찍은 걸로 아는데.

"운용 미숙으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아리랑위성' 3호에는 광학(光學)렌즈 카메라가 탑재돼 있다. 이는 디지털 카메라와 같다고 보면 된다. 흐린 날에는 구름만 찍힐 뿐이다. 기상 상황이 안 좋으면 위성에서 지상 사진을 찍어봐야 나오지 않는다."

―현장을 못 찍은 것은 탑재된 카메라 렌즈 때문이라는 것인가?

"멍청해서 그렇게 찍은 것이 아니다. 광학렌즈여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여름 '아리랑 5호'를 올리면서 레이저 카메라가 탑재됐다. 이제는 야간이나 흐린 날에도 지상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북한 위성사진의 주도권을 놓고 국방부와 국정원 간에 마찰이 있다고 들었다. 현재 국내 위성 영상 자료는 국정원이 모두 컨트롤하고 있다. 국방부는 국정원을 거쳐 이런 자료를 받는 형편이라고 하는데?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 다만 처음 인공위성 개발 사업을 시작할 때 국방부가 안 들어왔다. 이 때문에 위성의 국내 영상 정보를 국정원이 컨트롤하게 된 것이다. 부처 간 자존심 문제인데."

―이런 불만이 누적돼 국방부가 독자적으로 군사첩보 위성을 개발해 갖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안다.

"현재 부처 간에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보 측면에서 국방부가 자신의 목적에 맞는 군사위성을 갖는 것도 당연해 보이는데.

"미국도 그렇게 한다. 하지만 인공위성 개발을 별도로 하려면 예산 문제가 있다. 또 우리가 '군사위성'을 하겠다고 나서면 선진국에서 위성의 핵심 부품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위성 개발에 대해서도 견제하고 의심할 것이다."

영화에서 너무 현실로 온 것이 아닐까.

☞최준민 단장

서울대 항공공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학 석사, 미국 텍사스 A&M 대학 공학박사. 인공위성 열제어 설계 및 우주환경시험 전문가. 1994년부터 아리랑위성 1·2·3·5호와 천리안위성 개발에 참여. 이 위성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지구궤도에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