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1억 내놓고 死後 인세도 기부 "고바우가 받은 국민사랑 갚아야죠"

  • 기자 이지혜

입력 : 2013.11.06 05:47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 [5]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김성환 화백

평생 모은 만화 원판 6000여점 역사박물관에 넘기게 돼 돈 생기자 "기부할 수 있게 됐다" 아이처럼 반겨

"나보다 어려운 분도 이미 많이들 했습디다. 뜻밖의 돈이 생겨 일부 내놓은 것뿐이오."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만난 '고바우 영감' 김성환(81) 화백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는 네 컷짜리 정치 풍자 만화 '고바우 영감'을 반세기 동안 연재한, 한국 시사만화의 대가로 꼽힌다. 김 화백은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해 369번째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이 됐다. 사후(死後) 그의 책에서 나오는 인세 전액을 기부하는 '유산 기부'도 약속했다.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이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고, 사후(死後) 그의 책에서 나오는 인세 전액을 기부하는 '유산 기부'를 약속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이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고, 사후(死後) 그의 책에서 나오는 인세 전액을 기부하는 '유산 기부'를 약속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6·25전쟁 중 피란지 대구에서 펴낸 어린이 만화책까지 합치면 그의 책은 100권이 넘는다. 이 가운데 지금도 나오는 것은 '고바우 현대사'(4권) '고바우 유식한 잡학' '고바우의 한국 현대 50년사'(일본어판) 등이다. 이달 중으로 '일본 거상(巨商) 기담(奇談)'이 새로 나오고, 내년 1월에는 어린이 만화 '소케트군'(5권)을 재출간할 예정이다. 소케트군은 1970년대 10쇄 넘게 찍은 인기 만화다. 이렇게 꾸준히 책을 내고 또 재출간해 나오는 인세가 현재 매년 수백만원인데, 사후에 들어오는 인세는 전부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평생 역작으로 마련한 기부금

김 화백의 고바우 영감은 1955년 2월 1일자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조선일보(1980~1992년), 문화일보를 거치며 2000년 9월 29일까지 총 1만4139회가 나갔다. 뭉툭한 머리와 코에, 안테나 같은 한 올 머리카락의 고바우 영감은 권력을 향해 통렬한 비판과 해학을 날려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자유당 시절 절대 권력으로 통하던 경무대를 모욕한 죄, '인혁당 사건'을 무죄로 묘사한 죄 등 필화(筆禍)도 숱하게 겪었다. 1966∼1978년에 삭제·수정된 것만 250편에 이른다.

고바우 영감의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역사박물관은 그의 만화 원판 6000여점(약 20년치 분량)을 사들였다. 김 화백의 표현대로라면 '뜻밖의 돈'이 생긴 것이다. 그의 부인은 "(김 화백이) '나도 드디어 기부할 수 있겠다'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고 귀띔했다. 평생의 역작으로 기부금을 마련한 셈이다.

"고바우가 받은 사랑 갚고 싶어"

개성 출신인 그는 경복중 5학년 때부터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라는 만화를 그려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서너 살 때부터 방바닥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미술을 좋아했지만, 그때그때 원고료라도 받을 수 있는 만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6·25전쟁 중에도 종군 화가로 전쟁 기록화를 그렸고, '만화신보' '소년세계' 같은 잡지에 만화를 연재했다. 만화 캐릭터 200명을 습작한 끝에 고바우가 나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오가는 숱한 사람을 그리고 또 그리는 동안 한 장면을 포착해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힘이 생겼다. 그는 "3평 남짓한 방에 예닐곱 명이 새우잠을 자는 하숙 생활도 했고, 전 재산이 옷가지 한 가방뿐인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밑바닥 생활이 정치적 탄압을 견디게 한 힘이 됐고, 침묵하는 민심을 읽는 눈이 됐다"고 했다.

목돈 1억 내놓고 死後 인세도 기부
"신문에 그릴 때는 하루하루가 투쟁 같았소. 내가 민주와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생각도 했지. 이제는 편안한 것이 좋아요."

신문 연재 시절 그는 틈틈이 풍속도를 그리고 개인전을 열었다. 연재를 마친 후 지난 10여 년간은 장생도에 집중하고 있다. 해와 구름, 소나무와 거북이 같은 십장생으로 둘러싸인 정자에 고바우 영감이 느긋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자주 그린다. 누가 언제 보아도 마음이 편안하고 좋아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전시회도 가끔 여는데 좀 팔립니다. 여전히 고바우를 알아보고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요. 나중에 그림을 정리하면 기부도 좀 더 할 수 있겠죠."

사후에 재산 일부 또는 전부를 공익 목적으로 기부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펼치는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공동모금회는 법률·회계 등 각 분야 전문가 그룹을 선정해 유산 기부 절차와 방법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문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02)626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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