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크린은 孑孑單身(혈혈단신) 사투 중

"미안하다. 나는 사랑하고, 강해지고, 올바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보이스 오버(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인물의 목소리)가 끝난 뒤 시작되는 106분짜리 영화 '올 이즈 로스트'(감독 J.C. 챈더)에서 대사라곤 단 세 마디가 등장한다. 'F**k' 'SOS' '헬프'. 혼자서 인도양을 항해하던 남자(레드포드)의 요트는 바다에 떠있던 컨테이너와 부딪혀 구멍이 나고 폭풍우를 만난다. 남자는 밧줄을 묶고, 배 안의 물을 퍼내고, 식수를 만든다. 승리가 아닌 생존을 위해 바다와 고독을 등에 짊어지고서 묵묵히 노동을 수행한다.

◇공간과 압박의 생존 영화

올가을, 생존을 위해 홀로 싸우는 인간들이 극장에 나타났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그래비티'(감독 알폰소 쿠아론)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인간의 생존을 위한 분투를 그렸고, 지난달 23일 개봉한 '캡틴 필립스'(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소말리아 해적의 인질이 된 인간의 생존이 주제였다. 12월 미국 개봉을 앞둔 한 영화는 제목부터가 '론 서바이버'(감독 피터 버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우두머리를 잡는 작전에 투입됐다 홀로 살아남은 미국 네이비실 대원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지구 온난화나 좀비, 외계인 침공처럼 대재앙에 맞서는 인간 집단을 담은 '재난 영화'들과 달리, 네 편의 '1인 생존 영화'는 간결함과 사실성이 특징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 있는 인간은 단 한 명이고, 이들이 겪는 위험도 이미 인류가 실제로 경험했던 사건들이다.

그 결과 이들이 얻은 것은 '공간과 압박'의 재미다. 바다나 우주에 떨어진 인간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공간은 폐쇄와 개방, 두 가지 공포를 한꺼번에 안겨준다. 압박은 인원수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난 영화에서 수천~수만 명이 눈깜짝할 새에 죽었을 때 걱정하고 슬퍼할 겨를이 있을까? 감정을 이입할 대상이 단 한 명일 때, 그의 생존에 걸린 압박은 최고조에 이른다.

◇오직 영화만이 할 수 있다?

1인 생존극의 시작이랄 수 있는 '로빈슨 크루소'(대니얼 디포)는 이성과 과학으로 대표되는 18세기 계몽주의적 인간상의 전형을 구현한다. 하지만 2013년의 1인 생존 영화는 계몽주의 이후 발달한 문명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현대사회에서 생존이란, 과거의 그것에 비해 허망한 편이다. 휴대전화와 와이파이가 곧 생존의 도구인 현대인들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들은 대자연 혹은 우주 속에 혼자 던져져 온전히 육체와 노동만으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인간을 그린다. '올 이즈 로스트'와 '그래비티', '캡틴 필립스'가 홀로 남겨진 주인공에게서 가장 먼저 뺏어간 것은 바로 통신이다.

한편, 생존에 관한 수작(秀作) 영화들이 한꺼번에 나온 이유를 영화의 입지가 좁아진 것과 관련짓는 해석도 있다. TV는 할 수 없고,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들을 찾은 게 바로 생존 영화라는 것. 수십 편에 걸쳐 이야기를 거의 무한대로 펼쳐낼 수 있는 TV 드라마에서는 등장인물도 여러 명 내세울 수 있고, 이들에게 이야기를 다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길어봤자 2~3시간에 불과한 영화는 TV 드라마의 공식을 따르는 대신 반대의 길을 택했다. 환경을 제한하고, 등장인물은 최소한으로 줄인 것이다. '선택과 집중'인 셈. 챈더 감독은 "1시간을 다뤘든 일주일을 다뤘든 네 편의 영화는 모두 순간에 관한 것이다. 사람의 인생 중 가장 치열하고 고조된 한순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