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포커스] 우리 돈도 달러처럼 큰물에서 놀고 싶은데…

최근 우리나라 정부와 한국은행이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말레이시아 등과 원화를 해당국 통화와 교환할 수 있는 통화 스와프를 연이어 체결하면서 '원화 국제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통화 스와프 체결의 목적 중 하나가 원화 국제화 추진을 위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원화 국제화란 쉽게 얘기하면 원화를 국제적인 거래에서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출하면 달러 등 외화를 받고, 이렇게 모은 외화를 수입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만약 원화 국제화가 되면 원화를 주고 원자재를 사다가 반도체·자동차 등을 만들어 수출해서 원화를 받을 수 있어 환율이 변동해서 손해를 볼 일이 사라지게 된다. 또 외국인들은 해외에서 원화를 모아다가 우리나라 주식이나 채권에 직접 투자할 수도 있게 된다.

현재 국제화된 통화라고 하면 달러, 유로, 엔, 영국 파운드, 스위스 프랑 등 경제 선진국들의 통화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 캐나다 달러, 호주 달러, 뉴질랜드 달러 등도 국제 거래에서 통용된다. 최근 중국의 위안화가 국제화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원화의 국제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원화의 국제화, 경제 규모로 보면?

한 나라 통화의 국제화를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학계에 이론적인 틀이 아직 없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경제 규모를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한 나라의 생산량과 무역량이 크다면, 이 나라와 교역하는 국가들은 그 나라의 통화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 다음으로는 통화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환율 변동이 적고 인플레이션이 낮은 통화가 국제적으로 사용되기 쉽다. 이 밖에도 주식·채권 등 자본시장이 잘 발달해 있어야 하고 자본 거래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나 통제가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10년 기준으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로 세계 15위 정도의 경제 규모다. 이는 완전한 통화 국제화에 도달한 G5(달러, 유로, 엔, 파운드, 스위스 프랑)의 경제 비중 평균인 9.7%에는 못 미친다.

그러나 국경 간(cross-border) 외환 거래 규모가 국내 외환 시장보다 커서, 통화의 부분 국제화를 이뤘다고 평가받고 있는 호주(1.3%), 뉴질랜드(0.4%), 홍콩(0.4%), 싱가포르(0.4%) 등 16개국의 평균(1.3%)보다는 높다.

또 우리나라의 무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로 16개국 평균(1.5%)은 물론이고 호주(1.2%), 뉴질랜드(0.4%)보다 역시 높다.

그래서 경제 규모만 본다면 우리나라 원화는 통화 국제화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환율 변동성을 살펴보면 경제 규모와 환율의 변동성이 '역(逆)U자형'의 관계를 갖고 있어 경제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 커질수록 환율의 변동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통화 국제화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경제는 경제 규모와 환율변동성 관계에서 원화 국제화의 '문턱(threshold)'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원화의 국제화, 금융 규제로 보면?

그렇지만 자본시장 규모나 규제 정도를 따져보면 원화 국제화 가능성은 작아진다. 원화 국제화를 위해서는 시장에서 외국인이 원화와 원화 표시 자산을 확보하기 쉬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주식 시장 가치는 79% 정도로 G5 국가들의 평균치인 133.1%보다 낮고 아시아 경쟁국인 홍콩(618.5%), 싱가포르(186.1%) 등보다 낮다.

각종 규제로 인해 자국통화 표시 해외채권 발행 비중은 우리나라는 0.1%에 불과해 호주(20.3%), 홍콩(49.6%) 등에 비해 눈에 띄게 낮다. 국제적으로 금융 개방 정도를 따지는 대표적인 지수인 친-이토(Chinn-Ito) 지수로 따진 한국의 금융개방도는 45.2로 인도네시아(69.3)보다도 낮다.

외국인이 무역 결제나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하기 위해 필요한 원화의 공급이 부족해 원화의 국제적 활용은 제한적인데, 이는 외환거래의 절차적 규정이 복잡하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원화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자국 통화를 달러화로 바꿔 한국에 들어와 환전해야 가능하다.

◇통화 스와프는 원화 국제화 가능성 높여

이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와 한은이 추진하는 원화 통화 스와프가 원화 국제화의 길을 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통화 스와프의 특징은 달러를 매개로 하지 않는 원화와 상대국 통화 간의 스와프(교환)라는 점이다.

통화 스와프를 활용하여 원화가 원활히 공급되어 무역 결제에 사용되고 무역 결제의 잉여 원화 자금이 주식과 채권에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도록 관련 외환 규정이 완화된다면 원화 국제화의 길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부터 원화 국제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2006년 동북아 금융 허브 추진 과정에서 정책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무역 등 경상 거래에서는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원화 거래와 결제가 허용돼 있다.

그렇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의 자유화 추진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결정하면서 아직 주요 자본 거래에 대해서는 정부나 한은에 신고하도록 하는 등의 규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해외에서 자유롭게 원화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번 통화 스와프를 계기로 지급 수단의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통화 스와프를 활용한 무역 결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역 거래의 잉여자금인 원화를 비(非)거주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외환거래규제를 완화하고, 실제 원화를 외국인들이 해외에서 들여와 사용하는 데 있어서 시장에 숨은 규제는 없는지 찾아서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