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가 만난 고수] "주식 투자 대상, IMF 위기 넘긴 20년 이상된 기업에서 찾는다"

펀드매니저 출신인 신영자산운용 이상진(58) 사장은 업계에서 매년 꾸준한 수익률을 올리는 대표적인 가치 투자 전문가로 꼽힌다. 이 사장이 주도해 2003년 5월 출시한 신영밸류고배당펀드는 최근까지 10여년간 연평균 18%(복리 기준) 수익률을 올렸다. 지난 6년간 코스피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1.7% 하락했지만 신영의 또 다른 펀드인 '마라톤 펀드'는 같은 기간 28.5% 수익을 냈다. 증시 등락에 연연하지 않고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해 3~5년간 장기 투자하는 기법이 성과를 낸 것이다.

이 사장은 경북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가 5년 만에 신영증권으로 옮기면서 증권업계에 몸담기 시작했다. 이후 슈로더증권의 CIO(투자총책임 임원)를 거쳐 1996년 신영자산운용 창립 멤버로 돌아와 2010년 5월부터 사장을 맡고 있다. 이 사장은 머니섹션 M플러스와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치 투자'는 IMF 위기를 넘긴 업력이 최소 20년 이상은 되고, 이익잉여금이 쌓였으며, 5년 이상 3% 이상을 배당을 해온 회사"라며 "재무제표는 기본이고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특징을 살펴야 하는데, 투자자 입장에서는 모르는 업종에는 절대 투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주가가 2050선 돌파를 한 직후 지수가 다시 주춤하고 있는데, 지금 주식을 사야 하나.

"지금이라도 주식은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다른 옵션이 없다."

―많이 오른 주가가 부담된다.

"지난 6년간 코스피 지수는 거의 제자리 됐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2배 올랐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지수 보면서 투자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2050이니까 비싸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러면 어디에 투자해야 하나

"기업 내용에 투자해야 한다. 부실기업은 반드시 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과도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 코스피에 상장돼 있고, 유동성 문제가 있다는 몇몇 그룹 빼고 나면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좋은 기업을 고를 때 무엇을 봐야 하나.

"첫째 회사가 창업한 날로부터 20년 이상은 지나야 한다. IMF가 16년 전이다. IMF를 경험해보지 않은 기업체의 생존력을 높이 평가하긴 어렵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우리나라는 큰 피해를 안 봤다. 두 번째가 재무제표상에서 이익잉여금이 얼마냐, 부채비율이 얼마냐 두 가지는 꼭 봐야 한다. 20년 장사해서 이익을 쌓아놓은 게 별로 없다는 건 시원치 않거나 대주주가 돈을 빼먹었다는 뜻이다. 최소한 배당이 금리보다는 높아야 한다. 최소 5년 이상 3% 이상 배당해 주는 회사가 좋다. 그리고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업종에는 절대 투자하지 말라."

―'이런 기업은 피해야 한다'고 할 만한 특징이 있나.

"기업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 사장의 방이 큰 회사는 피해야 한다. 가끔 장관 방처럼 만들어 놓은 회사가 있다. 또 경영권이 2세, 3세로 넘어갈수록 유심히 봐야 한다. 가능한 한 창업주가 계속 하고 있는 회사가 성공 확률이 높더라. 직원 이직률이 높아도 안 좋다. 좋은 회사에 가보면 직원들 얼굴이 참 밝은데 망해가는 회사는 직원들 표정에 다 온다. 직원들한테 봄·여름·가을·겨울 일 년에 네 번은 같은 회사를 방문하라고 시킨다. 어떻게 보면 제조업만큼 '한방'이 작용하는 업종이 드물다. 봄에 가 본 회사는 죽어 있다가 가을에 가 보니까 잘 돌아갈 수도 있다. 갈 때마다 공장 마당에 트럭 대수가 달라진다."

―그런 특성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있나.

"영어 이름 많이 쓰는 회사는 별로 안 좋아한다. 요즘 기업들 이름 보면 한국 회사인지 미국 회사인지 모르는 회사가 많다. 경험적으로 촌스러운 이름 쓰는 회사는 속을 위험이 적다. 영업이익이나 매출이 너무 들쑥날쑥하면 안 좋은 회사다. 또 괜히 신기술이라고 떠드는 회사들은 피하고 싶다. 대한민국에 신기술은 별로 없다. 기술보다는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로 엮어내는 스토리를 가진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해서 높은 수익을 내려면.

"가끔은 전혀 리포트가 나오지 않는 회사를 주목해 보라. 리포트가 많이 나오는 회사는 그만큼 남들도 다 안다는 뜻이다. 하루에 몇 십주, 몇 백주밖에 거래가 안 되는 종목의 주가를 유심히 봐야 한다. 거래가 안 된다는 의미는 '나는 도저히 이렇게 낮은 가격에는 못 팔겠다'는 경우가 있고, '나는 이렇게 비싸게는 안 사겠다'는 경우가 있는데 경험상 대부분은 (기업 가치는 높은데) 가격이 낮은 때더라. 거래가 안 될 때가 거의 가격이 바닥일 때다. 그러던 게 주가가 2배, 3배 가면 거래량이 10만주 20만주로 는다. 거래가 폭발할 때 팔고 나와야 한다."

―한국이 외국인들로부터 준선진국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경기가 회복되는 게 맞느냐.

"직원들이 한 달에 기업 탐방을 40~50개씩 다니는데, 아직도 안 좋다는 업체가 70~80% 정도라고 한다. 내년에 경기 좋아진다고 해서 (GDP 성장률 전망을) 3.8% 보는데, 3.8%는 4% 정도 된다는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예전에는 성장률이 7~8% 가던 때도 많았다. 그렇다면 '3.8이 좋은 거냐' 내지는 '주가가 그렇게 올라가야 돼?' 하는 의문이 생긴다."

―요즘 주가가 지나치게 오른 종목이 있나.

"예를 들면 최근 화학주라든가, 조선주라든가 이런 것들이 조금 경기를 선반영해서 가격이 올랐다. 경기 민감주가 너무 많이 오른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 유망한 업종은 뭔가.

"꾸준히 괜찮을 수밖에 없는 건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주식이고, 조선과 화학은 분명히 올해보단 좋아질 것 같지만 주가가 빨리 올라서 아쉽다. 자동차나 전자 쪽은 금년 정도 장사가 되면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본다. 먹는 장사는 영원하고… 유통은 올해가 워낙 불황이었다. 다만 이제는 (유통이) 국내가 포화 상태고, 소비 여력도 많이 떨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내수' '내수' 하는데 아직은 좀 어색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