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오타쿠(한 분야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사람)는 廣場에서 논다

'오타쿠(お宅)'는 주로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등 한 분야에 열정적으로 빠진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다. 이들은 취미나 마니아 수준을 넘어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전문가에 버금가는 지식을 쌓는다. 오타쿠의 '궁극'은 그 분야 창작자로까지 성장하는 것. 그런 점에서 일본의 애니메이션·게임제작 회사인 '가이낙스'는 '궁극의 오타쿠' 집단이다. 야마가 히로유키, 안노 히데아키 등 20대 초반 청년들이 1984년 창업한 이 회사는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1995)과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1991) 등을 내놓으며 새로운 오타쿠 문화와 현상을 이끌었다.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특별전을 열고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가이낙스 대표이사 야마가 히로유키(51)를 11일 만났다.

―오타쿠는 때로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했다. 30년간의 변화라면?

"30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오타쿠는 '박해'를 받았다. '집(宅)', 즉 골방에서 자기들끼리만 교류한다는 부정적 이미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학교는 물론 직장에서도 '애니메이션 오타쿠'라고 밝힐 수 없었다. 멋진 남자라고 해도 오타쿠라고 찍히는 순간 주변의 모든 여자들과 멀어졌다(웃음). 1980~90년대 일본 버블 호황기에 일본은 서구지향적이었고, 오타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반면 당시 외국에선 일본의 새로운 문화로 추앙받았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버블경제가 끝날 무렵 국내 문화로 관심이 돌아오면서 애니메이션이 젊은이들의 문화에 파고들었다."

―30년 동안 가이낙스가 겪은 변화는?

"과거 그림 잘 그리는 인재를 구했다면 이젠 문학적·철학적 소양과 연출 재능이 있는 인재로 폭을 넓히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터들의 그림 실력은 지금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드라마와 감동을 끌어내는 것은 아직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 몫이다."

가이낙스의 대표작이자 '신드롬'까지 일으킨 '에반게리온'은 무기력한 10대인 주인공이 영문도 모른 채 지구를 침공한 '사도'와 싸우게 되는 내용. 아이러니하게도 '골방 이미지'의 오타쿠들이 만든 이 작품은 패배·허무주의에 빠진 1990년대 중반 골방의 청년들에게 '스스로를 직시하고 광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이 작품은 당시 네티즌의 왕성한 토론과 '사회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관객들은 작품 안에 숨겨진 종교적·정치적 의미에 대한 추측을 온라인에 쏟아냈고, 작품의 주인공을 내세운 팬아트와 팬픽(소설)까지 만들었다. 오타쿠들이 만든 작품이 새로운 오타쿠 문화를 만들어낸 셈이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오타쿠들이 형성한 문화는 대중문화에서 오마주와 패러디로 응용됐고, 이들이 열광하던 괴수물·로봇물·SF는 할리우드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매트릭스' '퍼시픽림' 등의 감독들은 공공연히 "오타쿠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에반게리온'으로 나타난 오타쿠 문화는 대중문화의 한 영역을 이끌었다. 오타쿠의 힘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든 즐기는 능력이다. (기자의 명함을 집어 들더니) 예를 들어 '명함 오타쿠'라고 한다면 이 명함을 받아든 뒤에 크기와 활자 디자인과 배열, 색상 등을 세밀하게 연구하고 이에 대해 같은 취향을 가진 다른 오타쿠와 공유해야 한다. 이런 걸 온전히 즐기는 사람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것이 바로 오타쿠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