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는 조금만, 수익률은 짭짤하게… 요리에서 금융을 배운다

내 취미는 요리다. 정식으로 이탈리아 요리를 배웠다. "증권사 사장 취미치고는 유별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솔직히 요리 실력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주방 출입의 역사는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꽤 오래된 일이다. 1986년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MBA 유학 시절 아내를 돕는다고 간단한 요리를 만든 것이 시작이다. 당시 아내가 딸을 낳을 때 예정일보다 일러 미처 장모님이 도착하지 못하셨다. 내 딴에는 실력 발휘를 했다. 직접 미역국을 끓여서 병원으로 날랐다. 아내는 그 미역국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맛이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 걸 보면 맛보다는 정성이 갸륵했던 모양이다.

꾸준히 요리를 해 본 건 1992년부터 영국 런던에서 7년간 근무할 때다. 주말이면 장을 봐서 한 끼 정도는 직접 요리해서 식탁을 차렸다. 국이나 찌개 종류가 대부분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평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솜씨를 제대로 발휘할 기회가 왔다. 딸이 봄방학을 맞아 아내와 서울에 갔을 때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중요한 고객 부부가 런던으로 여행을 온다기에 아예 우리 집에서 묵으라고 했다. 홍콩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 커플이었다. 양쪽 다 요리라면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지역 출신이어서 어설픈 요리로 대접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부부 둘 다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주말 이틀을 머무는 동안 정원에서 바비큐도 하고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발휘했다. 갈비는 아내가 양념을 해 놓고 갔지만 나머지는 모두 내 몫이었다. 없는 실력을 총동원했다. 내 요리가 가슴에 닿았는지 원래도 가까운 사이였던 그 고객은 내가 런던을 떠날 때까지 가장 큰 고객으로 남아 주었다.

아마 그때부터 "요리가 취미"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1999년 귀국하면서부터 요리와 멀어졌다. 일요일에도 모임이 있을 정도로 바빠지니, 요리는커녕 집에서 식사하는 일도 드물어질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잡지 인터뷰에 요리가 취미라고 해서 기사가 나자 당시 중학생이던 딸이 일침을 놓았다. "아빠, 일 년에 두어 번 하는 걸 취미라고 하면 안 되죠."

요리에 대한 나의 열정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은퇴 후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 내가 손수 요리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참 초라했다.

은퇴 후까지 미루다가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맘먹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시간을 빼고, 쪼개고, 나눠서 앞치마를 두를 시간을 만들었다. 작년 여름 한 번에 3시간씩 20회에 걸쳐 이탈리아 요리를 배웠다. 전채인 샐러드나 수프부터 각종 파스타, 피자, 스테이크, 다양한 후식까지 한 번에 두 가지씩 총 40가지 요리를 배웠다. 반죽을 직접 밀어서 만든 생면 파스타는 올리브오일에 캐비어만 살짝 곁들여도 쫄깃하게 살아있는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건면을 삶아서 내는 파스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븐 앞에 서면 파김치 같던 몸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불을 보고 있노라면 여름엔 땀으로 속옷이 흠뻑 젖곤 했지만 그렇게 행복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밤늦게 내가 한 요리를 가져가면 아내와 딸이 품평을 해 줬다.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나는 요리를 하는 동안 경영의 기본 철학을 느끼고, 되새긴다. 요리와 경영은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듯,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을까?' '직원들에게도 진심을 담아 행복을 전달할 수는 없을까?'

저금리,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계의 금융자산이 2400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은행의 낮은 금리에 만족 못 한다고 섣불리 위험한 투자에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어렵게 모은 서민의 '종잣돈'을 제대로 굴릴 수 있는 그런 금융 상품을 만드는 것이 요즘 내 관심사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리스크(위험)를 줄이면서 예상되는 수익률은 최대한으로 높이는 각종 금융 상품이 재료가 될 것이고, 고객들의 처지와 투자 성향에 맞게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것은 음식을 완성해서 담아 내는 것이 될 것 같다. 정성을 담은 요리처럼, 금융도 고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여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하듯 정성을 담아야 한다. 수익만 챙기는 데 급급해서는 덜 익은 요리를 고객들 식탁에 내는 반쪽짜리 셰프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예술 행위'라고 생각한다. 같은 재료로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맛과 모양은 백인백색이다. 요리는 또 '배려와 나눔'의 따뜻함도 담고 있다.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행복하겠지만, 그 사람들의 미소를 떠올리며 화덕 앞에 선 요리사의 마음이 먼저 행복해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금융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술자리서 절대 등 보이지 않고, 한번 점찍으면 투자하게 만들어

유상호(53)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1985년 한일은행에서 시작했지만, 1년 반 만에 대우증권으로 옮겼다.

1992년부터 7년 동안 대우증권 런던 현지 법인에서 일했다. 승부사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졌다. 당시 런던 금융가 ‘시티’에선 “한국 주식을 사려면 제임스한테 가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제임스’는 유 사장이 ‘007’ 영화 주인공 제임스 본드 이름을 따서 만든 영어 이름이다. 그는 한번 점찍은 고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투자하게 만들었다. “제임스는 술자리에서 절대로 등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술도 세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홍콩의 거물 고객을 접대할 때 나온 바퀴벌레 튀김을 맛있게 먹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당시 일에 대해 “고객이 먹는다면 바퀴벌레 아니라 더한 것도 웃으면서 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메리츠증권 상무를 거쳐 동원증권 부사장으로 일하다 2005년 동원증권이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한 회사가 된 뒤 2007년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됐다.

실패한 투자는 끝까지 원인을 분석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하는 타입이다. 좌우명을 물어보니 “다른 건 모르겠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