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前엔 유산 기부 권하면 화만 냈는데… 요즘은 20%넘게 동참"

"매년 1월 1일이 되면 새 메모장에 새 유언장을 씁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어떤 상황에도 유산 기부를 할 수 있게 한 장은 복사해서 집안 장롱에 잘 넣어두고, 다른 한 장은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김경래(85) '유산 안남기기 운동본부' 대표는 재킷 한쪽 가슴에 넣어둔 메모장을 꺼내 열었다. 맨 뒤쪽에 쓴 메모에는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을 때 자식들에게 남기는 말과 함께 통장에 든 돈을 교회 복지 시설과 학교·기관 등에 얼마씩 배분하라는 메시지를 적어뒀다.

신문기자로 일하다 은퇴하고 교회 장로로 활동하는 김 대표는 1984년 4월에 '유산 안남기기 운동'을 시작했다. 첫해에 참여한 회원 수는 23명이었지만 30년가량 지난 올해 누적 회원 수는 1251명에 이른다. 회원의 80% 정도는 60대 이상이다. 김 대표는 이들 모두 유언장을 품고 다닌다고 했다. "우리 회원들이 지켜야 할 강령이 세 가지 있어요. 매년 유언장을 쓰고, 친구들에게 널리 알리고, 살아 있을 때 재산을 미리 기부할 것!"

김 대표는 "미리 기부할 곳을 정해 정리하는 게 훨씬 더 속 편하다"고 했다. "가령 연말 구세군 냄비 같은 곳에 얼마씩 넣는 거예요. 유산이 적으면 적을수록 사후에 분쟁 소지도 줄어드는 법입니다."

김 대표는 30년 전만 해도 유산 기부를 제안하면 거부 반응이 심했다고 했다. "강연 가서 이 이야기를 하면 '지금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냐'며 욕을 퍼붓는 사람이 많았어요. 30년 전 500명을 모아두고 강연하면 많아야 네댓명만 유산 기부를 하겠다고 했는데, 요즘은 100여명한테 서명을 받아요"라고 했다.

"죽는 날까지 이 운동의 취지를 알릴 겁니다. 우리도 이제 남들 돕고 살 때도 됐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