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者 늘어도 성당은 비어… '靑春' 수혈 시급

천주교 원로인 정의채(鄭義采) 몬시뇰(88)이 '인류 공통문화 지각변동 속의 한국'(위즈앤비즈) 제2권을 펴냈다. 지난 반세기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 지성이었던 정 몬시뇰은 지난해 나온 제1권에서 세 번째 밀레니엄을 맞아 인류 문화의 중심이 서구에서 동양,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옮아가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을 짚어본 데 이어 제2권에서는 한국 가톨릭 교회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아흔을 앞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정열에 넘치는 노(老)사제로부터 한국 천주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서 들었다.

―한국 천주교의 교세 확장은 눈부십니다. 1945년 광복 무렵 남·북한을 통틀어 15만 명이었던 신자가 지금은 500만 명이 넘습니다. 2050년이면 천주교가 한국 최대 종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런 폭발적 성장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 천주교는 광복 후 시대적 과제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6·25 전쟁으로 한국인이 고통과 실의에 빠졌을 때 외국인 선교사와 한국인 사제들은 그들의 심신(心身)을 구원하며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근대화가 한국의 최대 과제였던 1960~70년대는 선진국의 문화와 정신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고, 1980년대 이후에는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사회를 민주화하는 데 적극 나섰습니다. 교회 내적으로는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를 통해 사제·수도자·평신도가 함께하는 공동체로 변화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한국 근대화에서 천주교의 기여를 강조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개신교가 물질적으로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면 천주교는 그보다 100년 앞서 한국인에게 새 정신을 불어넣었습니다. 18세기 말에 최고 수준의 젊은 학자들이 무너져가는 나라를 바꿔보려고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고, 그것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가 대규모의 순교에 이르렀습니다. 천주교는 굳게 닫혔던 나라의 문을 열게 했고, 세계가 아시아 동쪽 끝의 한국에 관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정신적 개국(開國)의 동력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뜻밖에 한국 천주교의 오늘에 대해서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며 우려하고 계시는데요.

"신자는 늘어나지만 성당은 비어가고 있습니다. 주일미사 참례율은 20% 선까지 떨어졌고, 그나마 젊은이는 별로 없습니다. 서구와 달리 사제가 줄지는 않지만 신자를 지도할 능력을 가졌는지 의문입니다. 젊은이와 지성에게 외면당하는 종교는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서구에서는 노동문제가 심각해지던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회칙(回勅·교황이 주교와 신자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가톨릭적 해법을 제시했고, 미국 가톨릭의 라이언 몬시뇰은 1930년대 그 정신에 따른 노동법 제정을 주도하여 대공황 극복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한국 천주교도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게 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 복음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 천주교의 미래를 젊은 신자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지론은 이번 책에서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공생(共生)·공조(共助)·공영(共榮)의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후진국들이 올라오는 세계사적 흐름에 우리가 앞장서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젊은 신자들로 해외봉사단을 만들어 그 지역들에 우리의 개발 경험을 전하고 우리 색깔의 문화봉사 활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이미 일부 성당에서는 자발적으로 청년봉사단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아래로부터 시작된 이런 움직임이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천주교 지도부가 관심을 갖고 정부와 기업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이는 '들숨'으로 한국에 들어온 천주교가 이제 '날숨'으로 세계에 공헌하는 길입니다."

☞정의채(鄭義采) 몬시뇰

1925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고 공산 정권의 탄압을 피해 월남, 1953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교황청 우르바노대 철학 박사로 중세철학의 대가이며 서울 명동성당 주임신부, 가톨릭대 총장, 서강대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신앙과 사회문제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을 많이 해왔고, 2005년 교황청으로부터 '몬시뇰(명예 고위 성직자)' 칭호를 받았다. 몬시뇰(Monsignor)은 '나의 주님'이란 뜻으로 덕망 높고 교회에 공이 큰 원로 사제에게 수여되는 경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