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날 선 그의 활자는 어디로 갔을까

'카운슬러'에 대해 감독인 리들리 스콧이나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 캐머런 디아즈, 브래드 피트와 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즈를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시나리오를 쓴 코맥 매카시가 먼저다. '핏빛 자오선' '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모두 다 예쁜 말들' 등의 소설로 잘 알려진 그는 '서부의 시인'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의 이름과 재능을 짊어지고 태어난 이 작품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덧없이 꺾여버렸다.

"다이아몬드에 대해서 논하려면 결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사러 온 남자에게 판매상이 해주는 조언처럼 영화 '카운슬러'는 인간에 대해 논하기 위해 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오싹한 농담을 던진다. '카운슬러'라고 불리는 변호사는 애인 로라(페넬로페 크루즈)에게 3.8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며 청혼한다.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클럽을 운영하는 사업가 라이너(하비에르 바르뎀)와 마약중개상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가 하는 마약 거래 사업에 투자한다. 그러나 이들이 운반하는 2000만달러(약 220억)어치의 마약이 사라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 카르텔이 이들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카운슬러의 탐욕과 오만은 악을 불러오고, 그는 '죽음보다 더 큰 패배'를 맛보기 시작한다.

매카시는 근거 없는 희망이나 낙관보다는 폭력과 탐욕, 염세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조화를 이루고 살 수 없는 인간들이 이 세계를 지탱할 수 있는 비밀을 선(善)이 아닌 악에서 찾는다. 종종 잔혹한 도살 같은 그의 소설은 신비로운 전설과 음산한 욕망으로 독자와 할리우드를 매혹시켰다. '모두 다 예쁜 말들' '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세 편은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다. '카운슬러'는 그가 소설이 아닌 시나리오로 쓴 첫 작품이다.

활자로 보는 매카시의 언어는 잘 벼린 칼끝을 보는 것처럼 오싹하다. 하지만 그 문자언어가 스크린 위에 그대로 구현되는 순간, 그 칼끝은 뭉툭하게 무뎌져 버린다. "진실의 온도 따위는 없어" "여자들이 왜 당신을 좋아하는지 아나? 당신이 갖고 있는 도덕적 딜레마 때문이지" 같은 대사들은 배우의 혀에 딱 달라붙지 않는다.

'카운슬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구한다. 다이아몬드 판매상은 그에게 '죽음에 대한 다이아몬드의 경고'를, 동료 변호사는 '인간의 선택과 인과(因果)'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과 본능, 악행과 윤리에 대한 이 작은 우화들은 구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데, 이 영롱한 구슬들을 하나로 꿸 만한 줄이 영화를 관통하질 않는다. 결국 꿰지 못한 구슬은 장광설이 되어 화면 위에 흩뿌려진다. 영상이 감당할 수 없는 활자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1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