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금융株 공매도(주식 없는 상태서 판 뒤 후에 갚는 투자법)… 실적부진 증권株 타격

금융위원회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투자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5년 만에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가 허용된 첫날(14일), 금융주 주가는 대체로 하락했다. 특히 은행, 보험과 달리 업황이 부진한 편인 증권주의 타격이 컸다.

14일 대우증권은 전날보다 5.2% 내린 9020원에 장을 마쳤다. 우리투자증권과 현대증권, 한화투자증권도 4~6% 떨어졌다. 증권업종지수는 전날보다 3.2% 하락한 1501.30을 기록했다. 반면 금융업종, 보험업종은 선방했다. 금융지주사들로 구성된 금융업종지수는 0.6% 하락했고, 보험업종은 장 초반엔 떨어지다가 막판 0.3% 상승으로 돌아섰다.

공매도란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판 뒤 추후 갚는 투자법을 말한다. 공매도로 단숨에 매도세가 몰리면 비정상적으로 주식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제한돼 왔고, 전날에야 전면 해제됐다.

◇"공매도 자체보다 공매도 우려감"

금융주 하락에는 공매도에 대한 우려감이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소폭이나마 올랐다. 코스피지수가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주 하락엔 공매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공매도를 준비 중인 투자자는 많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달 들어 금융주에 대한 대차잔액이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대차잔액이란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주식을 빌린 뒤 다시 갚지 않은 물량을 말한다. 최근에는 빌린 주식이 주가연계증권(ELS) 발행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래도 대차의 주목적은 공매도라는 인식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대우증권은 이달 들어 대차잔액이 63만5597주 늘었고, 신한금융지주가 124만6554주 증가했다. 그룹 리스크마저 겹친 현대증권은 지난달 말 172만8832주에 그쳤던 대차잔액이 전날 381만9301주로 단숨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13일 하루에만 188만5120주를 투자자들이 빌려갔다. 그만큼 공매도를 준비 중인 투자자가 많다는 의미다.

다만 이날 공매도는 우려했던 만큼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 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내 증시는 현재 주가보다 높은 가격으로만 공매도할 수 있는 업틱룰(up-tick rule)이 있기 때문에 주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서 "이날 하락은 공매도 자체보다는 공포 심리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거래 활성화 측면에서는 공매도 재개 긍정적

금융위원회가 금융주 공매도 제한 조치를 푼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분석된다.

일단 금융위 발표대로 한국 금융주의 체력이 많이 개선됐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금융주는 글로벌 은행들과 비교했을 때 각종 지표가 우수한 편"이라고 말했다.

또 거래 활성화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해외 헤지펀드뿐 아니라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페어 트레이딩(동일 업종 내에서 저평가됐다고 판단되는 주식을 매수하고 고평가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주식을 매도하는 것) 전략을 자주 구사한다. 그런데 금융주는 공매도가 원천적으로 제한돼 있어 아예 편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조치로 금융주 투자가 다소 활성화될 것"이라며 "프랑스 등 유럽의 사례를 보더라도 금융주 공매도 재개 이후 거래가 살면서 주가가 오히려 상승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금융주 공매도가 비금융주 공매도만큼 활성화될 경우 전체 금융주 거래량은 4.8% 증가한다.

다만 문제는 증권주다. 증권주는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이탈, 펀드 등 자산관리시장 위축으로 고전을 겪고 있다. 이태경 현대증권 연구원은 "한계 상황으로 치달은 일부 증권사는 공매도로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매도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판 뒤 추후 갚는 투자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