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양은 악인가? 억양의 좋고 나쁨은 가리기가 불가능한 일이다. 영국의 억양과 미국의 억양은 우월이 없다. 그 각각의 억양의 필요와 가치에 따라 그 억양의 용도가 다르고 기호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껏 비웃다가도 영국 귀족의 발음을 들으면 그리 근사할 수가 없고, 어떤 이는 영국 촌닭의 발음을 듣다가 미국인의 유려한 발음을 들으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우월한 발음을 가리는 짓은 매우 편협한 취향이다. ng라는 발음을 n과 혼용하는 중국인의 영어 발음도 세계 최고의 월스트리트저널 영상 뉴스도 허용하고 있다. 형식을 넘는 내용을 잘 진행하는 중국 여성 앵커의 능력은 발음을 이미 압도한다.
또, 전라도의 소리는 경상도의 소리보다 우월하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든 어느 것이든 소가 웃을 일이다. 어떤 억양도 다른 억양에 비해 절대적 우위는 착시요, 착각이다. 현실적 언어 대중이 실존하고 있는 살아있는 모든 언어의 발음은 그 지역의 언어 소통에 충분한 정도를 넘어 그 절대 언중의 알파고 오메가다.
작은 영토를 가진 한국은 산과 강과 내와 들판을 따라 소리도 나뉜다. 거기서도 경계 지역에서는 경계 밖의 소리와 소리가 섞여서 묘한 공존을 하기도 한다. 다면적인 억양을 가진 중간지대의 독특한 실존의 모습은 언어에 드러난다. 그 역시 현실적 언어 대중이고 하나의 한국어의 다양한 소리의 뿌리고 줄기다.
한 20여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역사와 지리에 기반한 한자의 뚜렷한 일종의 지역 소리는 한국에서는 폐기를 해야 하는 위압적이고 순수 중국음 절대 우위의 득세에 맥을 못 차리고 있다.
중국이라는 음을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일본이라는 글자의 음은 누구의 입자에서 불러 볼 수 있는 건가 하는 시각이 이제 한자로 형성된 역사와 권역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자각의 기반마저 흔들고 있다고 나는 보고 싶다.
언뜻 듣기에는 북경을 북경이라고 하는 건 모화사상에 젖은 한국인의 인식이고, 일본의 동경을 동경이라고 읽는 것은 식민의 잔재고 일본에 굴욕적인 사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나는 있었다. 그땐 왜 그랬을까.
국력과 더불어 이제 신문에는 중국음에 정통한 기자들이 신문사 중앙에 들어와 있고, 그들은 중국의 지역음에 중국의 고래의 인물이며, 지리의 산이며 도시나 명소를 중국음으로 표기를 할 정도로 유능하다. 이것 자체가 문제인가? 아니다, 그건 정확성의 문제고, 그 본래의 음을 찾아 주는 것이라 잘못된 게 있을 리가 없다. 적어도 정확도나 논리로는 당연한 선택이고 그 선택에 따라 책임을 다하는 것일 거다.
그런데 요새는 이상하게도 반란의 깃발을 들고 싶은 마음이 울컥거린다. 누구에 못지않게 그런 새로운 사고에 깨있던 왜 이리 반감을 느끼는 걸까? 서울 지역의 발음은 표준어이고, 지방어는 방언이 되었다고 해서 실존적 언어 대중이 그들의 집단적인 역사는 물론, 집단적인 군중의 숫자로만으로도 오래도록 사용하고, 몸에 입이 박혔듯이 입에 박힌 그 한 덩어리의 억양 덩어리는 폐기되고 짓밟혀야 할 부끄러운 거짓인가 하는 반감이 25년생 킹코브라처럼 똬리를 튼다.
살을 쌀로 표준말을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글로는 그 억양을 분간 못하는 사람도 쌀을 쌀로 표기하고, 절대 살로 표기하지 않는다. 이건 최소한의 현실을 안고 살아가지만 하나의 지역 표준에 다른 촉각은 지켜가겠다는 의식과 상식의 표현양식이다.
이런 표현양식을 거꾸로 동북아 지역의 한자 문화권으로 투영하고 기준을 삼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중국의 고유한 지명과 인물을 빼앗고 업신여기는 무식한 침탈이고 역사인식의 오류이고, 어학적 사실을 거역하는 반지식적 행태고, 저 황해에 투기하고, 현해탄에 가라앉혀 폐기시켜야 할 한국적 유물인가?
그렇다면 근세 한자어를 장식하는 다양한 한자 역어를 탄생시킨 일본의 한자는 중국인들도 중국음이 아닌 일본의 음으로 읽어 줘야 할 상대적 균형적 상식을 무조건 압도적으로 추종해야 하는 것이다. 어디 음만 그럴 것인가. 한성이라는 글자도 그 글자 자체를 바꿔 줘야 하는 게 예의가 되는 거고, 중국의 한자어 상식을 높이는 것이다. 과연 그렇지 않은가?
베드로는 피터로 바꾸고, 바울은 폴로 바꾸고, 파리세인은 필라스타인으로 바꾸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근대의 모든 한국의 성경은 폐기시켜야 할 규칙으로 가득 찬 것일 것이다. 과연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는 걸까. 왜 제갈량을, 관우를, 유방을, 북경을, 상해를 모두 중국 표준 발음으로만 돌려야만 하는 규칙을 한국은 지켜야 하는 걸까.
그것도 언어 대중이 방언을 넘어 오랜 역사에 엮여 어쩌면 살아 한국인 집단적 언어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 역사적 음을 항공기와 인터넷과 유학이란 공구로 이룩한 언어 능력의 그 기능적 칼로 무조건 베어 없애고 갈아치우는 일을 우리만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일까.
요동을 요동으로 발음할 때 한국의 역사는 그 음에 기반한 역사도 어느 정도 실체를 지킬 수 있다고 하면 이건 언어도단일까? 지금부터 삼국지를 읽고, 다시 역사를 형성시켜 나가도 될 정도로 역사가 없었다면 별 상관은 없지만, 이미 형성된 한국식 한자의 발음이 냉정히 역사의 단층에 빼곡히 박혀 있고, 언어에 무수하게 널려져 있는 한국사의 벌판에서 우리는 녹음기를 들고 원어민 녹음을 해서 다시 하나하나 대조하며 바꾸는 중국음의 한자 유일 표기 방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모택동을 듣는 인식은 나름의 역사적 모택동을 단박에 알게 해준다. 당태종이란 발음을 듣는 역사 교육을 학교에서 받은 이는 당태종에 대해 직접적으로 어떤 한국사적인 입장을 느낄 수 있다. 수나라도 그렇고, 명나라도 그렇고, 청나라도 그렇다. 그건 보이지 않게 전해오는 하나의 한국사의 글을 넘는 숨결이고 혼이다. 당태종이란 말에 한국인은 역사적 분노와 양만춘으로 추정되는 한국인들의 고대의 기상을 지금 당장 느낄 수 있다.
그 모든 게 그 '탕'으로, 그 '밍'으로, 그 '칭'으로 음성적 언어 규범으로만 한국어, 한글 발음으로 치환하는 순간 한국인 공동의 역사의 아카이브에 담긴 역사적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와의 역사적 인식은 마법처럼 발음에서 녹아 소멸되거나 멀게 만 느껴질지 모른다.
한때 방송에 자자하던 장안의 지가를 좌우하던 어느 인기 중국 노자 주석 연구 하바드 박사이자 스스로 우주보라던 한 대가가 펼친 행적과 그 찬란한 대작에 동감하는 광적 팬 중에 나는 이름 없는 한 부류였다. 적어도 한때 원어에 원음을 찾아주는 것이 당연하고 그 반대에 선 집단은 고리타분하고 한국적 유교의 퇴폐고 역사에서 중국을 타자화 못하는 집단으로 매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이뤄 준 많은 한자의 유물과 유적이 중국음으로 다시 포장되면서 같이 사라져가거나 잃게 될 숱한 한국사의 담장을 이루고 기둥을 이루고 지붕을 덮은 한국식 한자음이 소실되면서 같이 사라지는 그 역사에 대한 공동의 인식도 동시에 증발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중국음 주창자와 반대의 입장과는 다른 제3의 길로 들어섰다. 한자를 사모하는 것도 아니고, 한자를 경멸하는 것도 아닌 실용적 역사, 실용적 언어 사용 주의로 말이다.
아마도 경상도에 가서 모두 서울사람처럼 말을 하자고 하고, 전라도에 가서 그 토속적 억양을 모두 없애자고 하고, 또 이런 식으로 다시 한국의 모든 한자 지역음을 원어의 원주민의 발음을 되찾아 주자고 한다면 그런 논리대로면 경상도는 사라지고, 전라도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한국사에서 한국식 한자 발음을 없앤다면 그건 한국의 역사를 통째로 사라지게 하고, 오직 중국이 바라보는 중국사만 존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미 형성된 한국내의 모든 한자음에 중국 사성의 바람을 세게 불어 모두 날리는 짓을 더는 신문이 나서서 하면 안 될 것 같다.
가난하고 약한 족속들이 만들어 형성했던 역사도 사실 빌려온 글자고 역지사지하면 그 글자는 도리어 빌려 와 자기의 역사를 쓰고, 그 훔친 역사를 섞어 문화를 형성하였기에 그 문자의 음을 빼앗는 것은 그 가난하고 약한 족속의 역사를 허무는 짓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국식 한자음을 사라지게 하면 남는 건 중국의 원어 글자뿐이다. 거기에 중국음을 붙이면 한국사는 이미 한국사가 아니다. 그건 중국사가 되는 게 아닐까